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수몰 지구의 균열 파고든 사이비 종교

등록 2020-03-07 09:10수정 2020-03-07 09:2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오시엔>(OCN) 드라마 <구해줘2>

댐 건설 때문에 수몰 지구로 선정된 경기도 월추리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한국대 법대 교수이자 장로라고 소개한 최경석(천호진)은 이주 반대파와 찬성파로 갈라져 싸우던 마을 주민들을 하나하나 회유해 보상금을 받도록 설득한다. 어느새 경석의 말을 신뢰하게 된 주민들은 그가 마을에 개척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아직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조차 교회에 합류한 목사 성철우(김영민)가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본 뒤 절대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우연히 경석의 진짜 얼굴을 확인한 월추리의 문제아 민철(엄태구)은 그의 사기꾼 같은 정체를 밝히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오히려 민철을 사탄이라 부르며 멀리한다.

최근 이단·사이비 종교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이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오시엔>(OCN)에서 방영한 드라마 <구해줘2>도 그중 하나다. 2017년 방영작 <구해줘1>이 구원파의 유병언,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 영생교의 조희성 등 그 해악이 익히 알려진 대표적 이단·사이비 교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범죄 스릴러였다면, <구해줘2>는 사이비의 좀 더 근본적인 의미를 질문하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같은 소재 작품들이 흔히 사이비 단체의 항의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악역이 개신교 교회 장로로 설정됐다는 이유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대상이 되었다는 점부터가 아이러니하다.

2013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사회고발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한 <구해줘2>는 16부작 분량에 맞춰 마을 공동체가 사이비에 빠져드는 과정을 더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웃들끼리 사이가 돈독하고 정도 많아 ‘평화의 마을’로 불렸던 월추리는 수몰 지구로 선정된 뒤 급격한 분열에 시달리며 흉흉해진다. 겉으로는 보상금액을 더 높이는 데 주력하자는 이주 찬성파와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반대파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를 파보면 땅을 더 많이 가진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대결이다. 사이비는 바로 우리 사회의 이 뿌리 깊은 균열을 파고든다. 사기꾼 장로 최경석은 신앙공동체라는 유토피아적 공간을 제시하면서, 헌금 액수에 따라 자리를 차등 배정하며 주민들의 분열을 더욱 부추긴다. 선택받은 14만4천명의 숫자 안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어느 이단의 모습이 연상된다.

개척교회에 제일 먼저 현혹되는 인물들이 여성층과 젊은층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전근대적인 가부장들이 지배하는 월추리는 수몰 지구가 아니어도 이미 소멸을 향해 가는 곳이었다. 젊은이들은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18년째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최경석은 아버지 없는 청년 병률(성혁)에게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로 다가가 마을에 들어오고, 병률의 나이 든 엄마(이주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선(이솜), 억압적인 이장의 딸 광미(심달기) 등 여성들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이비의 전략은 역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계층을 소외시키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요컨대 <구해줘2>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넘어 그에 토대를 제공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환기한다.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의대 정원 1000~1700명 줄 듯…결국 물러선 윤 정부 1.

의대 정원 1000~1700명 줄 듯…결국 물러선 윤 정부

김건희 여사에 명품백 건넨 목사, 스토킹 혐의로 입건 2.

김건희 여사에 명품백 건넨 목사, 스토킹 혐의로 입건

“누구든 선한 길로 돌아올 것”…자유인 홍세화의 믿음 3.

“누구든 선한 길로 돌아올 것”…자유인 홍세화의 믿음

봄 맞아 물오른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쑥대밭으로 4.

봄 맞아 물오른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쑥대밭으로

대마도 인근 규모 3.9 지진…영남권서 진동 감지 5.

대마도 인근 규모 3.9 지진…영남권서 진동 감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