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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관심이 키운 아이의 슬픈 비밀방

등록 2020-03-20 20:15수정 2020-03-21 02:3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소년이 추락했다. 15살 은호(안지호)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혼자 고민하다 건물의 옥상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은호가 추락한 밀레니엄 호텔의 대표 백상호(박훈)는 혼수상태에 빠진 은호의 치료를 책임지는 호의를 베풀면서도 그를 향한 수상한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은호의 친가족과도 같은 강력계 팀장 영진(김서형)은 추락 사건 뒤에 심상치 않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은호의 담임 선우(류덕환)를 만난 영진은 그와 함께 그날 밤의 어두운 진실을 추적해나간다.

이달 초 방영을 시작한 에스비에스(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매우 독특한 수사극이다. 여고생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이야기 도입부만 보면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기존 수사극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추적 대상은 범인보다는 인간의 마음속 “겹겹이 쌓인 비밀들”에 있다. 성흔(몸에 종교적 징표를 새긴 흔적) 연쇄살인 사건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간직한 영진의 어두운 방처럼, 드라마 속 주요 인물은 모두 마음 깊은 곳에 비밀의 방을 감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미스터리는 아이들 마음속에 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은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진도 은호가 왜 그토록 외롭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영진이 추락 사건을 추적하는 동안 은호처럼 비밀을 감춘 아이들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학교에서 겉도는 반항아 동명(윤찬영)과 조용한 모범생 민성(윤재용)은 둘 다 외면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소년들이다.

드라마는 영진과 선우가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려준다. 아이들의 비밀은 대부분 그들을 외면하는 어른들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은호는 아빠를 사고로 잃고 엄마의 방임과 학대 속에 살아왔고, 동명은 소년 가장의 무게를 겨우 버티고 있으며, 민성은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해를 서슴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는 이 위태로운 소년들의 미스터리가 결국 연쇄살인이라는 가장 잔혹한 폭력과 이어지는 연결점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기존의 전형적인 수사물에서 범인의 심리를 파헤치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을, 소년들의 교사와 가족 같은 관계인 형사가 담당하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영진과 선우 모두 한때 아이들을 외면했고 이제는 그 사실을 후회하며 그들을 지키려 한다. 동명이 갈 데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며 자책하는 선우에게 영진이 ‘나도 은호를 처음 봤을 때 외면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다. <아무도 모른다>는 그렇게 무관심과 폭력 속에 방황하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그들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어른들의 슬픈 추격기를 그린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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