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에서 주민순찰대가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5년째 용역세력에게 점거돼 분양권자들이 입주조차 할 수 없었던 서울 신림동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 사태(
▶관련 기사 : 5년째 준공 못한 내집, ‘강탈자들의 성’이 됐다)가 끝내 용역세력에 10억원을 주고 공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재건축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막바지 공정이 중단됐던 이 아파트에선 소유권이 붕 뜬 사이 폭력조직원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내쫓았다.
6일 주민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가야위드안 관리업체인 신라씨엔디는 지난달 16일 이 아파트의 70여가구를 점거한 김아무개(37)씨에게, 점거한 집들을 비워주고 불법으로 건물 앞에 설치해둔 포장마차를 철거하는 것을 대가로 10억원을 건네기로 합의했다. 가야위드안 주민 등 여러 관계자들은 <한겨레>에 “김씨가 직접 폭력조직원을 소개하거나, 스스로 ‘영등포중앙동파’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18년 한 재개발 명도집행 현장에서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 전경. 전광준 기자
가야위드안은 2014년 시행사 대표가 비리로 구속되면서 시행사의 남은 직원들이 ‘용역’의 탈을 쓴 폭력조직원과 손잡고 주민들을 내몰았다. 준공되지 않은 건물에는 분양대금을 완납한 이들조차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법의 틈을 악용해 폭력조직이 주민들에게서 아파트를 ‘강탈’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새 투자업체가 이 아파트의 우선수익권을 낙찰받으면서 탈법이 횡행했던 ‘무방비도시’는 5년 만에 정상화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김씨가 2016년 아파트 앞에 대못처럼 설치해둔 포장마차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건축법상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아파트의 공개 공간을 점거한 탓에 포장마차를 철거해야만 준공 심사를 받을 수 있어서다. 김씨의 포장마차엔 2월 초순부터 덩치 큰 ‘용역’들이 들어앉아 숙식하며 지키고 있다. 불법 가건물이지만 ‘사유지’란 이유로 공권력이 철거도 못 하고 방치한 사이 주민들은 맨몸으로 용역들과 대치해왔다. 경찰은 되레 포장마차를 철거하라고 시위하는 주민들을 연행하기도 했다.
가야위드안 주민인 70대 강아무개씨는 지난 2월27일 철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끌려갔다. 그는 “포장마차 뒤쪽에 있는 지퍼를 열었다 잠갔을 뿐인데 경찰이 현행범이라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땅에 머리를 찧어 이틀간 입원했다”며 “왜 경찰이 법을 악용하는 편에 서서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미 찢어진 포장마차 비닐을 잡고 흔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 주민 진아무개(54)씨와 너무 화가 나 커터칼로 포장마차를 고정한 노끈을 잘랐다는 주민 배아무개(49)씨도 같은 날 재물손괴 혐의로 관악경찰서에 연행됐다. 불법 포장마차를 지키고 선 이들은 한명도 연행되지 않았다.
이에 주민들은 “경찰이 조폭과 유착한 것이 아니냐”며 서울지방경찰청에 관악경찰서에 대한 청문 감사를 신청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민원을 넣었다. 관악서 관계자는 “포장마차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주민들에 대해 입증 가능한 증거를 갖고 있다. 용역 세력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다. 최대한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 터라 서둘러 준공하고 분양해 수익을 내야 하는 시행사가 김씨 등 폭력조직들에게 합의금을 주고 공정을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공병호 주민자치위원장은 “3월 하순이면 분양금을 빌린 주민들의 대출 만기가 다가와 속은 쓰리지만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탈법과 폭력을 저지른 세력에 합의금까지 주게 된다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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