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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2년 한옥사는 맛에 푹 “멀쩡한걸 왜 헐라고…눈물나요”

등록 2006-01-08 20:02수정 2006-01-09 11:51

피터 바돌로뮤가 6일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30년 넘게 자신이 손보며 가꿔온 한옥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i.co.kr">jongsoo@hani.co.kr</A>
피터 바돌로뮤가 6일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30년 넘게 자신이 손보며 가꿔온 한옥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재개발열풍’ 성북구 한옥가에 사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멀쩡한 한옥을 왜 헐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32년. 이젠 한국인조차 잘 살지 않는 한옥에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30년 넘게 살았다. 그런데 그가 손보고 가꿔온 정든 한옥이 헐릴 위기에 빠졌다.

39년 전이었다.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아 영어를 가르치던 강릉에서 한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조선시대 고택인 선교장에서 5년 동안 머물면서 그는 곧 한옥의 멋과 한옥에 사는 맛에 빠졌다.

39년전 평화봉사단원으로 5년
1974년 다시 돌아와
동소문동 한옥에 터잡아…

1974년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그는 회사를 차리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을 샀다. 1920년대에 집장수가 지은 한옥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부엌 등 편의공간을 고친 것말고는 집 틀을 유지해 왔고, 여전히 두 달에 한 번 아궁이에 불을 땐다. 여름이면 단풍나무 아래 평상을 깔고 삼겹살을 굽는다. 그 사이 주변 한옥들이 하나둘 헐렸지만, 그래도 아직 동소문동에는 그의 집을 비롯한 60여채의 한옥이 옛 정취를 지키고 있다.

2004년 6월 서울시가 동소문동을 주택재개발 기본계획구역으로 고시하면서 동네가 재개발 열풍에 빠졌다. 주민들이 ‘재개발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무게중심은 재개발 쪽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주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고, 이어 5분의 4 이상이 동의하면 이곳은 우뚝 솟은 아파트촌으로 바뀌게 된다.

조금 춥지만 좋았는데
여름이면 나무아래
평상깔고 삼겹살 굽고…

“한옥은 겨울에 조금 춥지만 대청과 툇마루 앞에 덧문을 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도 노후·불량 주택이라며 철거하겠다는 겁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주민들과 함께 재개발 반대 모임을 꾸리고, 변호사에게 자문해 가며 재개발지역 지정에 법적인 문제점이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파’는 주민의 25%에 그친다. 그는 “이미 동네의 3분의 2가 3~4층짜리 빌라와 상가 등으로 개발됐는데 왜 또 재개발을 추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업자들이 몰려들어 재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선전하고 다니는 바람에 화기애애했던 동네 분위기가 망가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똑같은 고층아파트로
온나라 채우는 것 도저히…

외국인마저 한옥 보존을 위해 나서고 있는데, 당국은 정작 한옥 철거에 앞장서고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추진하는 재개발 계획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해당 한옥들은 전통 한옥이 아닌 개량 한옥이어서 문화적 가치도 없고 보존 대상도 아닌 노후·불량 가옥”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서울시와 시의회는 주택재개발 요건인 노후·불량 건축물 수 비율을 3분의 2 이상에서 60% 이상으로 완화해 재개발이 쉽도록 조례를 바꿨다.

“40년 가까이 대한민국 개발사를 지켜봤습니다. 크게 발전했고, 꼭 필요한 개발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헐고 서울에서 목포까지 온나라를 똑같이 생긴 고층 아파트들로 채우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멀쩡한 한옥들을 없애는 것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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