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출신 앙골라인으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가 287일간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던 루렌도 은쿠카 가족 여섯명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공항 밖으로 나온 지난해 10월11일 오후 인천공항 1터미널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환영객들이 꽃바구니를 건네자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인천공항/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항터미널 안에선 24시간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오가고 환한 조명이 쏟아졌다. 눈을 감아도 새어드는 불빛에 눈이 부신 곳에서 아이들은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난민인정 심사 기회를 달라며 인천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은쿠카 가족의 네 아이는 ‘백야’와 같은 공항의 밤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난해 10월 법원이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은 공항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됐지만, 아이들에게 이미 어둠은 너무도 낯선 존재가 돼 있었다. 부부가 늦은 밤 불을 끄려고 하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일이 한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1일 루렌도 가족처럼 난민인정 심사를 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공항에 오래 머무는 어린이의 경우 해당 기간 동안 입국을 허가하도록 법령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루렌도 가족은 콩고 출신자에 대한 앙골라 정부의 박해를 피해 2018년 12월 한국에 도착해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사무소는 이들에게 난민인정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가족은 이 결정에 반발하며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천공항 제1터미널 승객라운지에서 기약 없는 ‘공항감옥’ 생활을 시작했다.
공항터미널은 가족이, 특히 네 자녀가 머무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바깥 공기 한번 쐴 수 없었고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루렌도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 모임 활동가들이 음식과 생필품을 보내왔지만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당시 가족을 도왔던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목사는 “뜨거운 물에 밀을 타거나 시리얼 정도만 먹어서 영양실조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김어진 ‘난민과 손잡고’ 대표도 “화장실에 가면 아이들이 사람들 눈치를 보며 조마조마해 했다. ‘우리 계속 여기 있는 거냐’며 부모를 붙잡고 울었단 얘길 들었을 땐 가슴이 정말 아팠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7월 루렌도 가족은 아이들의 입국허가를 다시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한국 정부가 아동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지난해 9월 드디어 ‘공항감옥’의 문이 열렸다. 서울고등법원이 “박해를 피하려는 급박한 상황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루렌도 가족에게 난민인정 심사 기회를 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달이 지난 10월11일 인천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고 한국에 온 지 열 달 만에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루렌도는 홍 목사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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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족이 취하 의사를 밝히면서 인권위 진정은 자연스레 각하됐다. 하지만 인권위는 유엔 아동권리협약국으로서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아동의 입국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해 의견표명을 결정했다.
인권위는 송환대상자가 머무는 공항터미널 또는 출국대기실은 △외부와 차단돼 있어 햇볕을 쬘 수 없고 △적절한 영양섭취가 어려우며 △학교 등 교육기관이 없고 △수면이 어렵고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등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고 봤다. 또 난민 신청자에게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소송 및 심사기간 동안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는 유엔난민기구의 지침에도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루렌도 가족은 지난해 12월 난민인정 심사를 허가하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현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디아코니아 교회의 도움을 받아 안산의 한 반지하 주택을 얻었지만 아직 노동 활동을 할 수 없어 난민생계비로 지급되는 월 138만원으로 여섯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있다. 아이들 중 세명은 같은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함께 들어갔고 지역 이주민센터에서 심리상담도 받고 있다. 김어진 대표는 “얼마 전 루렌도 부부에게 마스크를 보낸다고 하니 뛸 듯이 좋아했다. 공적 마스크는 못 보내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어디냐 하며 좋아하더라”고 근황을 전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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