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덕씨가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근처 가게 손잡이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22일 새벽 6시 서울 구로구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 거리. 해가 뜬 지 10분 정도 지난 조용한 거리에 하얀 방역복을 입은 박흥덕(73)씨가 등장해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다. 플라스틱 재질로 된 소독통을 왼쪽 어깨에 메고 고무장화를 신은 박씨는 붓에 물감을 묻혀 도화지를 채우듯 거리를 닦아 나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의 문손잡이까지 꼼꼼하게 소독했다. “매뉴얼에는 이렇게 가게 손잡이까지 소독하라는 얘기는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만지는 곳이잖아. 그러니까 소독하는 게 좋지.”
박씨는 구로구청이 지난 2월부터 민간 방역업체에 외주를 줘서 운영하는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 방역 사업’에 참여하는 기간제 공공근로자다. 2013년부터 구청 등이 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지난해에는 구청 녹지 유지관리 업무를 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더는 못 하게 됐다. 그 뒤 벌이가 끊겨 폐지를 주울까도 생각했지만, 안 그래도 약한 몸에 코로나19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마침 나이 제한 없는 공공근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1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박씨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한다. 구로4동 집에서 동 자치회관으로 걸어서 출근하면, 동료 정충웅(82)씨가 20리터 말통에 담긴 소독약과 락스를 혼합해 소독통에 부어준다. “이 소독약이랑 락스를 39 대 1로 섞어야 되거든. 소독약 말통이 하나당 20리터이고 락스 한통이 1리터니까 말통 두통이랑 락스 하나 섞으면 되어요.” 정씨가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소독약을 만들자 박씨가 웃으면서 소독통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곧 남구로역 5번 출구부터 구로동길까지 자신이 맡은 구역을 방역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이렇게 내가 방역해서 한명이라도 코로나에 덜 걸리면 얼마나 좋아요. 보람 있지요, 당연히.”
이렇게 박씨가 하루 2시간 방역 작업을 하면 2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는다. 자녀들이 주는 용돈으로 세금을 내고, 아내와 함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는 박씨에게 기간제 공공근로로 버는 한달 40만~50만원가량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13살에 홀로 상경해 접시닦이부터 일용직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아껴서 사는 일은 이미 익숙하다. “용돈벌이라도 하니까 어디냐”며 껄껄 웃는 까닭이다.
박씨가 서울 구로구 구로4동 자치회관 쉼터에서 동료들을 위한 커피를 끓이고 있다.
하지만 이 일도 이달까지만 하면 끝난다. 5월부터는 생활방역 체계가 되면서 구청이 이 사업을 더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또 벌이가 끊기게 됐지만 박씨는 절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요. 여태까지 밥은 안 굶고 살았으니까요. 지금은 벌이보다 올 초에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진 아내 건강이 더 걱정입니다.”
방역을 마친 동료들과 자치회관 가스버너로 끓인 믹스커피로 몸을 녹인 박씨가 아내 아침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줘야 한다며 골목길 사이로 총총 사라졌다.
글·사진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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