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지아(가운데) 중령이 자신이 이끄는 부대에서 동료들과 걷고 있는 모습. missingFILMs 제공
막스는 20살 때부터 독일연방군(Bundeswehr)으로 일해온 군인이다. 군인인 아버지를 보며 어렸을 때부터 군인의 꿈을 키웠고, 군인으로 일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가 군인으로 일한 지 21년째 되던 2014년, 그는 남성으로서의 삶을 끝내기로 한다. 이미 17살 때부터 자신을 여성으로 여겼지만 긴 시간 숨기고 살아온 성 정체성을 바로잡고 행복한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가 마흔이 되던 해였다.
여성 비율이 12%밖에 되지 않는 보수적인 연방군 안에서 그는 커밍아웃한다. 커밍아웃 전,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경력에 흠집이 날까 걱정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 자신이 여성임을 더 이상 숨기고 살 수 없었다. 병원에 찾아가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진단을 받고 심리 상담과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행복한 여정 다큐에 담아
막스는 병원을 찾아가기 전, 직속 상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상사는 막스가 트랜스젠더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동시에 군대 내 트랜스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 막스에게 관련 정보를 모두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막스의 결정을 존중하며, 함께 이 과정을 이겨내보자고 했다. 상사는 막스에게 “앞으로 내가 당신을 여자로 대하면 되는 것이죠?”라고 물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랑하는 동료 중 한 명은 막스에게 직접 물었다.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막스는 대답했다. “아나스타지아” “그래 알았어, 아나스타지아” 아나스타지아는 그렇게 처음으로 새 이름을 말하고, 동료가 자신을 아나스타지아라고 불러준 그 순간 모든 것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비로소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나스타지아는 커밍아웃 1년 뒤인 2016년 3월, 법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했다.
커밍아웃 이후 그는 아무런 경력 손실을 겪지 않았다. 2017년 10월, 아나스타지아는 독일 베를린 근교 슈토르코브에 위치한 정보기술대대를 이끄는 중령으로 진급한다. 아이티(IT) 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진 약 750명의 군인이 일하는 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 된 것이다. 독일연방군의 최초 트랜스젠더 사령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2018년 8월 아나스타지아와 사만타는 결혼했다. missingFILMs 제공
아나스타지아와 아내 사만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채혜원 제공
아나스타지아의 이야기는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 <나는 아나스타지아입니다>(Ich bin Anastasia)로 만들어져 독일 전역에서 상영됐다. 아나스타지아의 게이 친구인 토마스 라덴부르거 감독이 촬영했다. 영화는 커밍아웃 이후 아나스타지아가 법적 성별 정정과 성확정(성전환) 수술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사령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모습을 담았다. 법과 의료에 관련한 복잡한 경로가 담겨 있지만,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한 트랜스젠더의 행복한 여정으로 그린다. 이는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준 부모와 동료,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나스타지아 곁에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사랑하는 그의 아내, 사만타가 있었다(아나스타지아는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팬섹슈얼(pansexual·범성애자)이다). 두 사람은 아나스타지아가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뒤 성전환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처음 만났다. 평소 큰 키의 여성을 좋아했던 사만타는 187㎝의 아름다운 아나스타지아를 처음 봤을 때, 트랜스젠더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대화를 나눈 지 몇시간이 지나 아나스타지아가 “당신은 내가 언제부터 여성으로 살았는지 아직 물어보지 않았어”라고 말한 뒤에야 그가 트랜스여성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사만타는 아나스타지아의 여정에 모든 순간 함께하고 있다.
“저에게 사랑은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날 만나고 아나스타지아에게 신체 변화가 일긴 했죠. 우린 이 변화를 즐거운 방법으로 다루기로 했어요. 그의 행복한 두번째 탄생을요.”
아나스타지아와 사만타는 두차례의 성전환 수술을 앞두고 친구들을 초대해 즐거운 파티를 열었다. 페니스 모양의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기다란 쿠션으로 집 현관을 버자이너 모양으로 꾸몄다. 2017년 독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 1년 뒤, 그들은 결혼했다. 아나스타지아는 “커밍아웃을 시작으로 이 아름답고 위대한 여정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건 항상 곁에서 지지해주고 모든 순간 함께해준 사만타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재 아나스타지아는 트랜스젠더법(Transsexuellengesetz) 폐지 운동과 함께 트랜스젠더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군대 내 성소수자인 퀴어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 트랜스젠더법에 따르면, 법적 성별을 정정하고자 하는 남성 또는 여성은 두 심리학자에게 ‘적어도 3년 이상 바꾸고자 하는 성에 대한 느낌을 지녔는가’ ‘앞으로 바꾸려는 성으로 계속 살고 싶어 하는가’ 등 항목에 대한 상담 검토 보고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판사가 결정을 내리며, 성별을 정정하는 과정에서 한화로 약 300만원에 가까운 행정 수수료가 든다. 이에 대해 아나스타지아는 트랜스젠더법이 △스스로 성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침해 △강제 심리검사를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낙인과 차별 △1년 정도 걸리는 긴 행정절차와 비싼 수수료 등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가시화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커밍아웃 1년 뒤 연방군 내 매체에 인터뷰를 하거나 다큐멘터리 촬영에 응한 것도 모두 트랜스젠더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는 “트랜스젠더는 자주 일터에서 편견과 오해에 시달리며, 끝내 해고당하는 차별을 겪고 있다”며 “다행히 독일연방군 내에서 트랜스젠더는 해고되지 않고 보호받지만, 여전히 우리가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일부 의견 때문에 군대에서 여러 차별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독일 공군이었던 크리스티아나는 2001년 커밍아웃한 뒤 해고되지는 않았으나 10년 뒤 스스로 군대를 떠났다. 군대가 트랜스젠더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독일의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였지만, 독일군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는 현재 유럽 항공우주 방위사업체인 에어버스에서 일하고 있다.
퀴어 독일연방군으로 이뤄진 비영리단체 퀴어연방군협회(QueerBw) 회원들. 아나스타지아는 맨 왼쪽에 서 있다. QueerBw 제공
아나스타지아를 만나며 떠오른 친구들
군대 내 퀴어를 지원하기 위해 아나스타지아는 퀴어 군인으로 이뤄진 비영리단체 퀴어연방군협회(QueerBw)의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퀴어를 둘러싼 군대 문화를 바꾸는 것이 단체 활동의 주된 목적이다. 이를 위해 아나스타지아를 비롯한 250여명의 회원은 군인을 대상으로 퀴어 인권 보호를 위한 무료 강의를 다니고, 군대 내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퀴어 이슈가 다뤄지도록 하고 있다. 군대 내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군인을 위해 일대일 상담도 제공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국제여성공간(IWS)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인 트랜스젠더 에스(S), 이란 출신 트랜스여성 난민 활동가로 종종 현장에서 만나는 엠(M), 동료들과 가장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일하며 자신의 성전환 수술 지원금 마련을 위한 파티를 열었던 아르(R)가 생각났다. 그들은 그저 내 동료이고, 단골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이며, 활동가 동지다. 트랜스젠더가 미디어에서만 다뤄지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처럼 일상과 주변에 많아질수록, 우리는 비로소 차별 없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어려워진 요즘, 아나스타지아와 사만타를 만나 내가 꿈꾸는 세상에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베를린의 따스한 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