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체포된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를 비판하며 피고인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이 “현행범 체포 때 임의제출받은 압수물은 영장을 받지 않더라도 증거능력이 있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하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무단 촬영된 레깅스를 입은 여성 사진을 판결문에 실었던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기소된 박아무개(36)씨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박씨는 2018년 5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지하철역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 신체 일부를 4차례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체포 당시 휴대전화를 임의제출받아 추가 범행 사진 7개를 확인했다. 임의제출이어서 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체포 현장에서 긴급하게 피의자 소지품을 압수할 경우 나중에 영장을 받아야 하지만, 피의자가 임의제출한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가 허용되고 나중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검찰은 박씨를 기소했다.
재판에선 임의제출받은 휴대전화 사진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됐다. 1심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장원석 판사는 박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2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체포 현장에서 피의자로부터 소지품을 받는 절차는 임의제출이 아닌 강제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박씨의 휴대전화 일부 사진은 증거로 쓸 수 없다며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런 해석이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기는 하나 영장주의 원칙에는 오히려 충실하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해 9월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들을 불법 촬영해 같은 혐의로 기소된 택배기사 김아무개씨 사건 항소심에서도 휴대전화 사진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현행범 체포 현장에서 임의제출한 물건이라도 압수할 수 없고 사후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장필수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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