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큰불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이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8명의 희생자를 낸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 4월29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기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한 추모일이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참사는 또다시 되풀이되고 말았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노동자들은 “근무 전 피난 및 안전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화재 위험이 큰 용접·용단 작업 등에 대한 안전 대책 마련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돼 4월2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된 내용을 보면 사업주는 화재 위험 작업을 하기에 앞서 불꽃·불티가 튀어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를 하고, 노동자들에게 화재 예방 및 피난 교육을 해야 한다. 또 작업 전체 과정에 대한 안전조치 시행 여부 등을 점검해 모든 작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현장에 게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한겨레>가 30일 만난 생존자들은 사고 현장에서 안전교육 등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업체 쪽으로부터 작업 중 위험 요소나 사고 발생 시 피난 경로에 대해 사전에 안내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29일 처음 물류센터 현장에 투입됐다는 40대 남성 ㄱ씨는 “다른 건설 현장에선 보통 투입된 첫날 안전교육을 받는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ㄴ씨도 “첫날이라 안전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건설 현장과는 달리 이곳에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발화지점이 아닌 지상 2층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데 대해 소방당국은 ‘대피로를 찾지 못해 빚어진 참사’로 보고 있다. 사전에 모의훈련 식의 화재 피난교육을 진행했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또 아직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산업현장 재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우레탄폼’ 희석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통풍·환기 등의 조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사업주는 인화성 물질 등이 있어 폭발·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서 폭발이나 화재를 막기 위해 통풍·환기 및 분진 제거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
이번 참사에서 시공사뿐 아니라 원청업체가 안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도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여러 도급업체가 한 장소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 원청은 작업 내용과 순서를 안전하게 조정해야 한다. 공정률 85% 수준이었던 이천 물류센터에는 9개 업체의 노동자들이 모여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유증기가 발생하는 우레탄폼 작업 뒤에는 충분히 환기를 시킨 다음에 용접을 시작하는 등 작업 내용과 순서를 안전하게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완공이 급한 공사 막바지엔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동시에 작업을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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