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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삼성 내부문건’이 말해주는 전방위 불법승계 의혹 스토리

등록 2020-05-03 17:13수정 2020-05-04 11:25

삼성물산·제일모직·삼바·에피스 등
합병·회계사기의 목표는 단 하나
최종 수혜자 이재용 소환 임박

미전실 작성 ‘M사 합병추진’
합병 결의 전후로 악재·호재 풀어
이재용 불법승계 도운 ‘주가조작’

회계법인 삼정 보고문건
삼바 자회사 콜옵션 3년간 누락
삼정 ‘삼바가 콜옵션 숨겼다’ 항변

삼성바이오의 내부문건
1.8조 콜옵션 반영하면 자본잠식
회계처리 변경으로 ‘폭탄 피하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1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1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만 1년 4개월에 걸친 검찰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 수사가 ‘종막’을 향해 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최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을 연이어 불러 조사하는 등 막판 ‘혐의 다지기’에 들어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검찰 출석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은 복잡다단하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 중 벌어진 불법행위 의혹이라는 ‘본질’은 단순하다. 금융당국·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 등으로 드러난 삼성의 각종 내부문건은 이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된다. 삼성 수사의 ‘스모킹 건’이 된 3가지 문건을 골라, 이를 중심으로 ‘물산 합병·바이오 회계사기’ 의혹 사건을 재구성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다...‘승계작업’ 신호탄

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이태원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은 그 뒤 급박하고 거칠게 이어질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의 ‘신호탄’이 됐다. 그해 6월 이 부회장 등 총수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과반이 넘는 ‘에버랜드’는 상장을 결정하고,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승계작업의 핵심은 이듬해인 2015년 5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었다. 합병 당시 이 부회장 등 삼성 대주주 일가는 제일모직의 주식 42.19%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식 보유율은 1.41%에 불과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주식 4.06%를 갖고 있었지만,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의 주식이 없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평가된 상태에서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부회장에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명실상부한 삼성 총수 등극을 위한 일종의 ‘대관식’이었던 셈이다.

■2015년 4월, 삼성 미래전략실 ‘엠(M)사 합병추진(안)’…합병을 위한 ‘주가조작’ 계획

합병 공개(2015년 5월26일) 한 달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작성한 ‘엠(M)사 합병추진(안)’에는 대관식을 온전히 치르기 위한 삼성의 ‘필승 전략’이 담겨있다. ([단독]‘삼성물산 합병 전 주가조작’ 미래전략실 문건 나왔다)

이사회 결의로 합병이 공개된 뒤, 엘리엇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을 중심으로 ‘1 대 0.35’(제일모직 대 삼성물산)라는 합병비율이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겐 유리하지만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논란이 벌어진다. 미전실은 두 회사의 합병비율에 대한 삼성물산 주주들의 문제 제기를 예상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을 짠다. 합병 결의 전 악재를 털어내고 결의 뒤 호재를 쏟아내는 식으로 “주가관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전실은 내부문건에서 “(국민연금이) 제일모직 주가가 삼성물산 대비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었다고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2015년 4월)부터 주총 및 주식매수청구 기간까지 주가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주가 악재 요인은 1분기 실적에 반영 또는 합병 이사회 공시 전에 시장에 오픈해 주가에 선반영”하고 “주가 호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후 7~8월에 집중하여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미전실의 ‘합병 필승 전략’을 충실히 따랐다. 2015년 상반기는 주택경기가 활황이었지만 삼성물산은 합병 결의 공개일(5월26일) 이전엔 아파트를 300여 가구만 공급했다가, 합병 결정 뒤인 7월 이후부터 서울에 1만여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합병 결의 전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해놓고도 합병 뒤인 7월 말이 되어서야 공개했다. 제일모직은 7월1일 핵심 계열사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사실도 공개했다. 법조계에서는 문건 속 행위들이 자본시장법으로 금지된 시세조종 행위(주가조작)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 2015년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015년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9월·11월, 삼정 보고문건…삼바 ‘콜옵션 은폐’ 드러나

문건대로 악재와 호재를 선별적으로 공개해 ‘주가관리’에 성공한 삼성은 7월17일 합병 찬반을 물은 주주총회에서 승리한다. 삼성물산은 이날 국민연금을 포함한 69.5%의 찬성(주주 83.57% 참석)으로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합병이 옛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이뤄졌다는 점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뒤인 2015년 9월9일, 삼성바이오의 감사인인 삼정케이피엠지(KPMG·삼정) 회계법인의 회계사가 삼성물산에 보고문건을 보낸다. ([단독] 삼정 “삼바 부채 누락” 결론내고도…삼성물산에 분식회계 제안)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에피스에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인식해야 했는데 이것이 지난 3년간 누락됐고, 따라서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를 2012년까지 모두 소급해서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수조원대 ‘콜옵션 부채’가 재무제표에 반영되면, 삼성바이오는 합병 당시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던 회사가 된다.

두 달 뒤인 11월 삼정이 거듭 삼성물산에 보고문건을 보낸다. 이 ‘11월 문건’은 삼정이 ‘콜옵션 부채’를 지난 3년간 누락했던 사정이 설명돼있다. 문건을 보면, 합병 결의 두 달 전인 2015년 3월까지 진행된 회계감사에서 삼정은 미국의 바이오젠 보고서를 통해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합작해 에피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콜옵션 조항에도 합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삼정은 삼성바이오에 합작계약서를 요청했지만 삼성바이오는 응하지 않았고, 결국 삼정은 계약 내용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콜옵션 조항을 부실하게 기재한 2014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삼정의 ‘11월 문건’은 한마디로 ‘삼성바이오가 감사인인 삼정에 콜옵션 조항을 숨겨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는 항변이었다.

2015년 11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 중 일부.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11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 중 일부.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11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콜옵션 부채’ 시한폭탄 터지다

삼정의 ‘콜옵션 부채’ 반영 요구는 삼성으로서는 ‘시한폭탄’을 터뜨려야 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당시 삼성의 급박한 사정은 2015년 11월10일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미전실에 보고한 ‘바이오, 바이오젠사 콜옵션 평가이슈’ 문건과 같은 달 18일 작성된 내부문건인 ‘바이오, 바이오젠사 콜옵션 평가 관련 회계 이슈’ 문건에 잘 드러나 있다. ([단독] ‘이재용 지분’ 가치 높이려 삼성바이오 활용…내부문건 나왔다)

문건은 삼정의 요구대로 “1.8조의 (콜옵션) 부채 및 평가손실”을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본잠식(이) 예상”된다고 명시했다. 옛 제일모직이 지분 45.7%를 보유했던 핵심 자회사 삼성바이오가 물산 합병 당시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공개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합병이 삼성바이오의 ‘콜옵션 부채’가 누락된 채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1 대 0.35’라는 합병비율이 잘못되었다는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었고, 합병 자체가 무효라는 요구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대관식까지 무사히 치른 ‘승계작업’이 엉망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삼성은 이 문건에서, 바이오젠과 협의해 콜옵션을 소급 수정하는 방법, 에피스의 평가를 줄여 부채규모를 줄이는 방법 등 서로 모순적인 회계처리 방식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콜옵션 부채 1조8000억원을 반영하되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로 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리는 방법을 택한다. 여기에는 삼정·안진 등 국내 굴지 회계법인들도 ‘공모자’로 가담했다.

하지만 회계 기준상 ‘지배력 상실’을 위해서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2015년 11월 자회사인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삼성바이오가 내세운 ‘지배력 상실’ 이유는 “2015년 말부터 엔브렐(자가면역치료제) 등 바이오 복제약이 국내외에서 판매승인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삼성바이오는 4조5000억원의 장부상 이득을 거두면서 ‘자본잠식’ 위기에서 탈출한다. 훗날 검찰 조사에서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바이오 복제약 판매승인이 “회계처리를 변경하기 위해 급조한 ‘이벤트’였다”는 취지로 진술한다. ([단독]회계방식 바꾼 이유라던 복제약 승인…삼바 CFO ‘급조된 이벤트’ 실토) 이것이 금융당국과 검찰이 지적하는 ‘회계사기’다.

■2018년 11월, 전모 드러난 회계사기…‘이재용 소환’만 남아

2016년 12월,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자료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의 흔적을 발견한다. 2018년 5월1일,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동일인 변경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총수’에 올라섰다. 그해 11월1일, <한겨레>는 삼성의 급박한 ‘분식회계’ 모의가 담긴 내부문건 내용을 보도했고, 같은 달 20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를 분식회계를 벌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12월1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현 반부패수사2부)는 삼성바이오와 삼성물산 등 삼성계열사와 삼정·안진 등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하면서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를 3년간이나 끌어올 만큼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 규명이 쉽지 않은 것 아니냐”는 회의론과, “삼성 수사는 ‘국정농단’ 사건의 중추에 해당하는 만큼 혐의가 견고하게 완성돼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교차한다. 검찰 수사의 ‘마무리’는 결국 무리하게 이뤄진 ‘합병’과 ‘회계사기’의 ‘최종 수혜자’를 가려내는 일일 것이다. 삼성 일가의 요란한 대관식에 한국사회가 치른 비용은 컸다. 참여연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얻게 된 금전적 이익이 3조1000억~4조1000억원에 이르고, 국민의 노후 수단인 국민연금은 5200억~6750억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훼손한 부당한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를 가리는 일만이 남았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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