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진 KCC 회장. <연합뉴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정몽진 케이씨씨(KCC) 회장이 삼성물산 자사주를 사들이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쪽과 별도의 ‘이면계약’을 맺은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삼성물산에서 사들인 자사주로 의결권을 행사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합병 주주총회를 앞둔 2015년 6월께 이재용 부회장 쪽이 정몽진 회장 쪽과 만나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계약 이외의 주주간 약정을 맺은 단서를 파악했다. 검찰은 지난 15일 정 회장을 불러 이면계약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면계약의 존재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당시 정 회장이라는 ‘백기사’가 없었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 그해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이사회가 ‘1 대 0.35’의 합병비율로 합병에 결의한 사실을 알리면서, 삼성물산 주주들 사이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에 비해 합병비율이 지나치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2014년 말 기준 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영업이익은 3배, 자본금은 2.5배 더 많았지만, 합병비율은 거꾸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보다 3배 높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해 6월, 합병에 반대하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움직임으로 합병 성사 여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 보유 사실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고 6월9일 법원에 합병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일성신약 등 다른 주요 주주들도 합병비율에 불만을 나타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6월10일 기준 9.92%)였던 국민연금은 7월10일 합병 찬성 전까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물산은 자사주 전량인 5.76%(899만557주)를 케이씨씨에 6743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6월10일에 발표했다. 삼성물산이 자체 보유할 때는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가 케이씨씨에 매각되면서 의결권이 살아난 것이다. 원래 “자사주 매각은 없다”는 게 삼성물산의 입장이었고 6월11일이 합병안 주주명부 폐쇄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 그리고 케이씨씨는 주총에서 5.96% 지분(6월8일 매입 지분 0.2% 포함)을 합병 찬성 쪽에 투표했다. 찬성률 69.5%로 합병 승인 마지노선인 66.66%를 가까스로 넘겼다. 삼성물산이 케이씨씨에 자사주를 넘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자사주 매각을 두고 시장에서는 “삼성이 급한 상황에서 케이씨씨가 손을 내민 만큼, 향후 주가가 하락했을 경우 케이씨씨가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이면계약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삼성물산은 “이면계약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를 뒤집는 단서를 포착한 만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당시 삼성이 전방위적으로 탈법을 저지른 정황이 더 짙어졌다. 한 금융소송 전문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 등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면계약을 맺고 자사주를 처분했다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나아가 이면계약을 통해 ‘반대급부’를 보장하고 합병안 찬성을 약속받았다면, 주주권 행사에서 부정한 청탁을 금지한 상법 631조(권리행사방해 등에 관한 증수뢰죄)에도 위배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케이씨씨 관계자는 <한겨레>에 “당시 이면계약을 맺은 적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삼성물산 관계자 또한 “자사주 매입 계약 외에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내용이다. 이면계약은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삼성 쪽과 합병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소환 일정을 조율 중이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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