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생활관 증축 공사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물품이 야외에 방치돼 있다. 나눔의집 제공
지난해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생활관 2층 증축 공사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유품·물품이 훼손된 사실이 드러났다. 운영진의 몰이해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가 망가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쟁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앞장선 활동가인 할머니들이 생전에 썼거나 쓰고 있는 물품들은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한 역사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난해 공사로 인해 할머니들이 ‘위안부’ 피해 증언 등의 공로로 받은 인권상패가 깨지고 훈장(고 김군자 할머니)과 사진(고 김순옥 할머니), 시민들에게 받은 편지 일부 등이 비에 젖어버렸다. 직원들은 본인들의 만류에도 안신권 소장 등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방에서 짐을 모조리 빼 장마철 야외에 방치해둔 탓이라고 주장했다.
20일 김대월 나눔의집 역사관 학예실장은 “공사 전 할머니들 방은 역사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된다고 분명히 운영진에게 전달했다. 처음에는 ‘알겠다’고 대답한 운영진은 이후 공사업체 쪽에서 방을 비워달라고 요구하자 직원들과 봉사자들 몰래 할머니 짐을 빼버렸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등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고 김군자 할머니 방의 경우, 문이 잠겨 있는데 열쇠를 찾을 수 없자 방문을 부수고까지 들어가 물건들을 치웠다는 게 직원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생활관 증축 공사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물품이 야외에 방치돼 있다. 나눔의집 제공
그렇게 치워진 짐들은 생활관 바깥으로 한꺼번에 옮겨졌다. 김 학예실장은 “비가 내리는데도 짐더미 위에 비닐 한장만 씌워놔 모두 젖어버렸고, 유리로 된 것들은 신문지로 싸지 않고 박스에 담는 바람에 깨져버렸다”고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비닐 위로 빗물이 흥건히 고이고 군데군데 비닐이 찢어져 빗물이 스며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 학예실장은 “어떤 할머니 물건인지도 모르게 한꺼번에 짐을 싸놓고 사진마저 찍어두지 않아 이후 직원들의 기억에 의존해 물건들을 분류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연구자들과 기록 전문가들은 “인류사적인 사료 가치를 외면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할머니들이 쓰던 컵, 펜 하나, 색칠 연습 한 종이 한장에도 전쟁폭력 피해자들의 마음이 응축돼 있다”며 “‘부의 유산’(반복되어선 안 되는 과거의 잘못을 상징하는 유산)을 훼손한 중차대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나눔의집 운영진을 비판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관련 행정기관과 정부는 그동안 할머니들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