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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리벨론으로 떠나자, 가장 큰 가방을 메고

등록 2020-05-30 15:08수정 2020-05-30 15:09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21. 2010년대가 낳은 명작 롤플레잉

라리안 스튜디오
라리안 스튜디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는 흔히 말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게임이다. 모든 문화의 애호가들이 그렇듯,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명작의 목록은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주제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입지를 가진 게임 중 하나다. 수많은 국가에서 발행되는 매체들에서 매긴 평점들을 모아 합산해주는 대중문화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이 게임의 평점은 95점이다. 재미는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이쯤 되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도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게임의 무대는 ‘리벨론’이라 하는 가상의 세계다. 일곱 신이 지배하고 있고, ‘공허’라는 장막 너머의 세계에서 밀려드는 괴물들에게 위협받고 있다. 갑옷을 입은 전사와 마법사들이 존재하는 중세풍의 세계이고, 드워프나 엘프 같은 친숙한 판타지 종족들도 등장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등장하는 주인공이, 배를 타고 ‘기쁨의 요새’라는 변태적인 이름의 수용소로 가고 있는 죄수다. 그리고 이 배에 탄 모든 죄수는 ‘근원’이라고 하는 미증유의 힘을 제어하는 구속구를 목에 차고 있다. 즉 이 배의 모든 죄수는 근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근원술사’들이다. 이후 게임은 근원의 정체, 동료들의 사연, 거대한 지역 이곳저곳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헤쳐나가게 된다.

이 게임에서 우리는 조금 질릴 만큼 많은 디테일을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만나게 된다. 가령 게임 안에는 상호작용할 수 있거나 주울 수 있는 수많은 물건이 있다. 하지만 적과 싸우는 데 베개나, 쇳조각, 나무 막대기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면 이렇다. 나무 막대기를 날붙이로 가공하면 그것은 화살대로 변한다. 쇳조각을 가공하면 화살촉으로 변한다. 이런저런 원소들을 더하면 불, 물, 전기, 독 등의 강력한 위력을 지닌 화살로 쓸 수 있다. 바닥에 있는 기름통을 부숴서 불을 붙이고, 물이 뿌려진 바닥에 번개 마법을 사용하고, 지독한 독가스를 뿜어내는 나무통을 갖고 다니다가 적이 우리를 알아채기 전에 적진 한가운데 던져넣을 수도 있다. 이렇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모험가들은 회복약, 은수저, 전설의 무기, 잡다한 열쇠와 종이 뭉치, 사람의 주검과 뼈가 굴러다니는 집채만 한 가방(실제로 이렇게 보이지는 않지만)을 메고 기나긴 여정을 해나가야 한다.

캐릭터들의 직업이나 싸움 방식 역시 조금 색다르다. 그동안 이런 중세 판타지풍의 게임들에서는 양손검을 든 기사는 마법을 쓸 수 없고, 마법사는 근접무기를 들기 어렵다는 식의 다소 배타적인 직업 구분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능력들을 조합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조금씩 다 하는 팔방미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서로 다른 직업의 능력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의 수도 많다. 때문에 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것이 최강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조합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왕도를 따르지 않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디테일한 상호작용들과 캐릭터 성장의 즐거움만으로도 이 게임은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게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악당이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세계의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게임 속에서 나의 행동들은 크고 작은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내 결정과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고 그에 따라 변하는 게임 속 세계는 여전히 희망사항이고, 자율성의 환영들만이 게이머에게 제시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심리테스트에 더 가깝다. 그러나 어쩌면 이 환영을 그럴듯하게 엮어내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게임의 조건이다. 그러니 아직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되도록 가장 큰 가방을 메고 리벨론으로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침 게임 시간도 아주 길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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