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 거부감을 표시하는데도 성희롱적 언행과 행동을 일삼은 한 40대 직장 상사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ㄱ(4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한 중소기업의 ㄱ과장은 여성 신입사원 ㄴ씨에게 지난 2016년 10월부터 음담패설 등을 건네기 시작했다. ㄴ씨의 머리카락 끝을 손으로 비비며 “여기 만져도 느낌이 오냐”고 묻거나 “화장 마음에 들어요. 오늘 왜 이렇게 촉촉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행동을 하거나, 어깨를 툭 치고 ㄴ씨가 뒤를 돌아보면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앙앙’ 소리도 냈다. ㄴ씨가 불쾌감을 표시하며 항의하자 ㄱ과장은 ㄴ씨에게 퇴근 직전 업무 지시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떠넘기기도 했다. 성적 수치심에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던 ㄴ씨는 결국 사직했다.
ㄱ과장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로 기소됐지만 1∙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ㄱ과장이 상급자이기는 하지만 ㄴ씨보다 2개월 일찍 입사한 경력사원으로 인사나 업무 수행 등에 있어 영향력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거부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ㄴ씨도 성적 농담으로 대응한 사실을 두고 ‘심리적 두려움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ㄱ과장이 상급자의 위력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ㄱ과장이 업무 관계로 인해 보호·감독을 받는 ㄴ씨에게 위력으로 추행한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에서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위력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ㄱ과장의 행위는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인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며 “ㄱ과장과 ㄴ씨의 관계, 추행행위의 행태나 당시의 경위 등에 비춰 보면, ㄱ과장이 업무·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력으로 추행하였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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