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형편껏 꿈꿀게” 아빠 덮친 병마, 14살 윤지는 꿈을 접었다

등록 2020-06-03 07:42수정 2020-06-03 09:35

<한겨레> 2019 나눔꽃 캠페인
30년 전 사고로 다리 절단한 아빠
3년전엔 간경화로 쓰러지며 입원
담낭에 관 삽입·패혈성 쇼크까지
결국 큰딸의 간을 이식받았지만
검사비·수술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한달 기초수급 180만원이 전부
병원 빚 갚는데만 100만원 쓰여
큰언니도 가난에 아나운서 꿈 접어
엄마 “막내의 꿈은 지켜주고 싶어”
윤지(가명)와 언니들이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윤지 방에 컴퓨터가 있어서 학교 과제를 하거나 수업을 들을 때 언니들이 방에 들어오곤 한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지(가명)와 언니들이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윤지 방에 컴퓨터가 있어서 학교 과제를 하거나 수업을 들을 때 언니들이 방에 들어오곤 한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열네 살 윤지(가명)의 꿈은 댄서다. 무대 위 주인공(가수)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열정만 가진 게 아니다. 중학교 2학년인 윤지는 교내 춤 동아리를 이끌면서 지역대회 본선까지 진출했다. 소질이 있다는 칭찬도 쏟아졌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어 엄마와 함께 학원을 알아봤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학원은 예고 진학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며 한달 학원비로 100만원 가까이 요구했다. 엄마는 윤지의 손을 잡고 학원을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윤지는 실망감을 숨기고 엄마를 위로하듯 말했다. “엄마, 내가 너무 돈이 많이 드는 꿈을 꾸고 있지? 괜찮아. 형편껏 꿈꿀게.” 그날 이후 윤지는 엄마에게 학원이나 예고 이야기를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_________
30년 전 사고는 비극이 되어 가족을 덮쳤다

단념하는 법을 일찌감치 배운 이는 윤지만이 아니다. 윤지의 세 자매는 모두 일찍 철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위해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아픈 아빠와 가족을 돌봐야 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윤지의 큰언니 최윤영(가명·20)씨의 어릴 적 꿈은 아나운서였지만 빨리 취직해 가족을 돌보겠단 생각에 인문계고가 아닌 실업계고를 택했다. 지금도 윤영씨는 티브이에서 아나운서를 보면 헛헛한 마음에 채널을 돌리곤 한다. 둘째 윤민(가명·19)씨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용돈을 받으면 쓰지 않고 고이 주머니에 넣어두곤 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서 혹여나 돈이 부족하면 자신의 용돈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세 자매의 엄마 홍연경(가명·49)씨는 지금도 꼬깃꼬깃 코 묻은 돈을 꺼내어 자신에게 내밀었던 딸의 모습을 기억한다.

가족의 불운은 30년 전 이미 ‘복선’처럼 깔려 있었다. 윤지의 아빠 최현욱(가명·50)씨는 30년 전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고 장기가 파열되는 사고를 겪었다. 갓 스무살이 돼 돈을 벌기 위해 외국 어선에 올랐을 때였다. 태풍 속에서 팽팽해진 철제 밧줄이 끊겨 나가며 그대로 최씨의 하반신을 때린 것이다. 이 사고로 최씨는 평생 의족과 장루(인공항문)를 착용해야 하는 장애를 입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뒤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지만 누구도 의족을 찬 그에게 일을 주려 하지 않았다. 장루는 그의 컨디션에 따라 쉽게 늘어졌고, 무게를 견디지 못해 피부가 쓸리거나 피가 나는 일도 적잖았다. 그래도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아내 홍씨를 만나 세 딸을 낳게 됐고, 부산에서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족의 삶을 다시 덮쳤다. 2017년 가을 최씨가 간경화로 쓰러지며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병원은 그가 이미 C형간염을 앓고 있었고, 오랜 기간 방치한 탓에 간경화까지 상태가 악화됐다고 했다. ‘30년 전 사고 당시 국외에서 급하게 수혈을 받으며 C형간염에 감염됐으나, 한국에 들어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의료진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치료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고됐다. 쓸개즙을 빼내려 담낭에 관을 삽입했고 담석을 제거할 때마다 고열과 어지럼증, 극도의 고통이 따라왔다. 면역력은 점점 약해졌고 온몸에 염증이 생기더니 심장과 혈관에도 무리가 갔다. 결국 그해 겨울 생명을 위협하는 ‘패혈성 쇼크’까지 찾아왔다. 항생제가 힘을 쓸 때까지 혈압조절기와 인공호흡기로 버텨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아빠는 괜찮아.” 감염 위험이 있어 병문안을 오지 못하는 딸들과 통화할 때마다 최씨는 거듭 말했다. 두 달여 뒤 세 자매가 병원을 찾았을 때 아빠는 입원 전보다 30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준 상태였다. 자신보다 가볍고 작아진 채 병상에 기대앉은 아빠를 만나던 날, 윤지는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렸다.

고된 치료는 계속됐고, 극한의 고통을 오가며 최씨는 나날이 파리해져갔다. 간을 새로이 이식받아야 이 고통이 끝날 듯했지만, 병원 쪽에선 “이미 너무 많은 수술을 받아왔기 때문에 또다시 큰 수술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새로운 병원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간 이식이 가능하다는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지만 뇌사자의 간으론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건강한 이의 간 일부를 이식해야만 최씨가 회복될 수 있으니 기증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윤영씨가 아빠를 위해 나섰다. 세 딸 중 성인으로 이식수술이 가능한 건 윤영씨뿐이었다. “아빠를 위해 못할 게 뭐가 있느냐”며 맏딸은 의연히 웃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 홍씨의 심정은 괴로웠다. 혹시 모를 합병증으로 큰딸도 남편처럼 황달이 오고 달리기를 못하게 되는 상황만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딸에게 꼭 이식을 받아야겠냐”며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큰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지난 3월 부녀의 간 이식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윤영씨는 제대로 밥을 먹을 수도 없을 만큼 복부 통증이 심했고, 약 냄새마저 역하게 느껴 구토를 반복했다. 가족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후유증으로 얼굴이 검어진 것 같아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윤지도 언니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언니가 아니라 내가 아빠에게 간을 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최현욱씨(가명)가 평소에 사용하는 의료물품들. 접착제를 하도 바르다보니 최씨 피부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현욱씨(가명)가 평소에 사용하는 의료물품들. 접착제를 하도 바르다보니 최씨 피부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_________
수급비로만 생활하는데…수술비만 3천만원

건강만이 가족의 문제는 아니다. 아픈 최씨는 몇년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홍씨도 세 자매를 돌보느라 직장에 다닐 수 없었다. 가끔 아르바이트가 들어오면 10만원, 20만원씩 생활에 보태는 게 부부가 버는 돈의 전부였다. 한달 기초생활수급비 180여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살림에 이제 병원비 고지서까지 쌓여 있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인 최씨는 입원비 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됐지만 윤영씨가 성인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맏딸의 근로능력이 인정되면서 의료급여 자격이 1종에서 2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약값은 매달 40여만원씩 청구됐고, 이식수술 뒤엔 챙겨야 할 약이 많아 약값이 갑절인 80여만원으로 뛰었다. 수술에 들어간 돈도 만만찮다. 간 이식수술을 하는 데만 3천만원 넘게 들어갔고, 윤영씨가 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비만으로도 300만원이 더 필요했다. 또 반년에 한번씩 최씨의 담낭에 삽입한 관이 말썽을 일으킬 때에는 추가로 100만원을 들여 관을 바꿔줘야 했다. 친구들과 친척들이 쌈짓돈을 모아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홍씨는 병원비를 6개월, 1년, 또는 몇년씩 할부로 결제해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지만, 이는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 있다. 지난달 가족이 받은 180여만원의 수급비 중 병원 빚을 갚는 데 쓰인 돈이 100만원이다.

_________
“윤지가 계속 꿈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진 것이 없어도 함께 있어 행복했던 가족에게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홍씨는 장기간 남편의 병 수발을 들면서 심한 불면증을 갖게 됐다. 수면제를 처방받아 억지로 눈을 붙이려 해도 각종 대출금이 생각나 밤을 새우기 일쑤다. 최씨도 무력감에 시달린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어려워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보니 대학생인 딸은 학과 회비도 내지 못하고 있고, 윤지가 꿈을 접으려 한 것도 모두 자기 탓인 것 같아 괴롭기만 하다.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는 윤지의 마음도 황량해졌다. 요즘 윤지는 ‘아빠’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흘린다. 최씨는 ‘오늘도 힘내라’,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딸들에게 매일 보낼 정도로 두 언니에게도 다정했지만, 유독 막내인 윤지를 아꼈다.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 “힘내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요즘 최씨는 윤지와 영상통화를 하지 않는다. 아픈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다. 윤지도 이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윤지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채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중얼거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땐 아침이면 저만 살짝 깨워서 같이 산책을 나가곤 했어요. 집 앞에 있는 국밥집에서 같이 아침을 먹고, 아빠 오토바이에 타서 같이 바닷가까지 달리기도 했어요. 그때가 너무 그리워요.” 윤지의 말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다행히 최씨는 지난달 29일 퇴원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빠에게 간을 이식해준 윤영씨도 차츰 건강을 되찾고 있다. 말을 잃었던 윤지는 최근 방문을 열고 다시 엄마와 언니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많은 걸 단념하고 살아온 가족들은 막내 윤지의 꿈만은 지켜주려 한다. 홍씨는 무엇보다 윤지가 꿈을 지켜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지의 언니들처럼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접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당장 학원은 가지 못하더라도 윤지가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부산/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윤지(가명)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인 세븐틴의 컵홀더가 방에 전시되어 있다. 윤지는 매번 컵홀더가 바뀔 때마다 카페에 가서 컵홀더를 모았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지(가명)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인 세븐틴의 컵홀더가 방에 전시되어 있다. 윤지는 매번 컵홀더가 바뀔 때마다 카페에 가서 컵홀더를 모았다. 부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캠페인 참여하시려면

윤지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은행 1005-903-850183 예금주: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1544-7944)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3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윤지의 교육비와 아버지의 의료비 및 통원치료비, 가정의 긴급생계비로 쓰이고, 3천만원 이상 모금되면 윤지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주원(가명)의 사연(<한겨레> 2020년 2월5일치 16면)이 소개된 뒤 총 4505만7863원(5월4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많은 후원자가 ‘주원이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일시후원계좌로 후원해주신 365명과 네이버 해피빈으로 후원의 손길을 전달한 5227명의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후원금은 주원이에게 필요한 치료비와 의료소모용품 구입비용으로 쓸 예정입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