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지원단체가 지난달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40년 넘게 거리에서 생활해온 노숙인 ㄱ(61)씨에게 코로나19를 버텨낼 긴급재난지원금의 문턱은 높았다. 지난 3월과 4월, ㄱ씨는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를 신청하려고 시청과 구청을 찾았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는 이유로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근근이 나가던 일용직 아르바이트 자리도 잃었다. 정부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자 ㄱ씨는 지난달 중순 주민센터를 찾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담당 공무원은 “관련 지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ㄱ씨는 3일 <한겨레>에 “지난 몇 달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홈리스’들에게 재난지원금은 죽고 사는 문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지원금이 간절한 노숙인들은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보다 앞서 지난 4월부터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저소득 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주기 시작했지만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지원단체들이 지난달 노숙인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난지원금을 받아본 노숙인은 11.8%에 그쳤다. 주소지가 (노숙지에서) 멀거나(27%), 신청 방법을 몰라서(26%) 받지 못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특히 거주불명자나 주민등록 말소자는 재난지원금을 신청조차 할 수 없어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20년째 노숙생활을 하는 ㄴ(41)씨도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방법을 몰라 아직 신청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 망원동에 주민등록이 돼 있지만 경기도 의정부에서 노숙 중이다. 두 달 전 경기도에 재난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지자체에선 “신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소지인 망원동에 가야 한단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준다는 재난지원금을 어디에,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ㄴ씨는 “재난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받아 생활비에 보태 쓰고 싶다. 형편이 많이 어렵다”고 말했다.
노숙인 지원단체에서는 정부의 노숙인 지원체계를 이용해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거리 노숙인들의 경우 주거비가 시급하기 때문에 현금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홈리스행동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0%는 가장 필요한 지출 항목으로 주거비를 꼽았다. 현재 현금으로 재난지원금을 받으려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장애인연금 수급자여야 한다. 홈리스행동은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홈리스에게도 사용처에 제약이 없는 현금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노숙인을 위한 정부의 대책은 감감무소식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노숙인들을 위해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본인 확인 뒤 지급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빠르면 2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인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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