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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0년 위안부 운동’ 마치 끝난 듯 평가 말자

등록 2020-06-04 05:00수정 2020-06-08 09:03

‘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⑥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연세대 젠더연구소장

나는 수요집회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나는 ‘여고’ 3학년 여름방학 때 텔레비전을 통해 김학순 씨의 증언을 들었는데, 내 옆에 있던 ‘남자’ 어른은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 민주화와 진보를 고민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뉴스 보도를 보자마자 ‘민족의 수치를 저렇게 드러내야 하나’라고 힐난하듯 말했다. 김학순씨의 증언 이후 가을 무렵 ‘위안부’를 재현한 드라마가 크게 유행을 했는데 학교에서 생물 선생님이 철조망을 사이에 둔 남녀 주인공의 입맞춤 장면을 세밀하게 설명하면서 ‘위안부’ 역을 맡은 ‘여자’ 배우 가슴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를 거듭 강조했다. ‘위안부’에 대해 내게 말을 건넨 두 번째 ‘남자’ 어른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니 학교에서 몇몇 여자 선배들이 기지촌 활동이나 수요집회에 나가자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는 기지촌 활동에도, 수요집회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내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기 전에 가두시위 현장으로, 철거민 싸움터로 내 손을 잡아끄는 선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있으니 우선 급하고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구술 서사를 전공하고 대학교수가 된 후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을 가진 여성들이 구술한 이야기를 읽고 관련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억은 1991년까지 봉인되어 있었다. 기억의 봉인과 함께 그들의 삶과 고통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김학순씨가 입을 열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는 유령과도 같았다. 그저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증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폭력의 기억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었고 그 자체로 다시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었을 테지만 당시 이 말조차도 들으려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곁을 지킨 이들과 연대하며 국내외의 법정과 증언장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라고 주문했고,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들어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은 폭력의 기억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세상의 관심은 한일 간의 이슈가 부각되고 가라앉는 데 따라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어떤 이들은 검사나 판사처럼 ‘내가 판단해줄 테니 팩트를 말해보라’는 태도로 증언을 요청했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말과는 상관없이 ‘민족’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정동에 저 홀로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20차 정기 수요집회가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소녀상 앞에서 열린 가운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회원들과 시민 200여명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20차 정기 수요집회가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소녀상 앞에서 열린 가운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회원들과 시민 200여명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영화 속에서 증언에 나선 여성들은 모두 옷을 벗어 자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녀의 말을 믿지 않던 이들이 모두 그 상처를 보고 깊은 탄식을 내며 그제서야 그 말을 믿기 시작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재현한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는 ‘소녀’, 혹은 ‘할머니’로 국한된다. 그리고 여기 중요한 수식어가 들어간다. 바로 ‘순결한 소녀’, 그리고 ‘순수한 할머니’다. 나는 한국 사회가 이들의 30대와 40대와 50대를 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순결’과 ‘순수’를 벗어난 생애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시간 동안 이들을 침묵하게 했던 ‘폭력’을 한국 사회 스스로가 고발할 수 있을까.

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가 견뎌온 시간과 그들과 연대해온 활동가들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쓴 글을 읽었지만, 역시 ‘나는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감히 짐작한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호명되었던 이들이 경험한 폭력의 가해와 피해에 모두 연결되어 있고, 또 그들과 연대할 사회적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배봉기씨가 본인의 의지가 아닌,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혀야 했을 때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당신이 고통스런 기억을 끄집어내 증언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기억한다. 우리가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기억을 통해 비가시화된 존재들을 가시화한다고 할 때 기억에 대한 책임과 윤리적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폭력의 피해 당사자에게만 증언의 의무를 강요하며 그 증언을 통해서만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로부터 적은 피해를 본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피해 정도에 따라 당사자성의 위계를 정할 수는 없다. 또 폭력의 피해를 본 사람만이 당사자성을 갖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식민 지배의 폭력과 그 폭력의 흔적, 그리고 성적 폭력의 현실에 대해 어떤 당사자성을 갖고, 가져야만 한다. 당사자성의 확장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겠노라 말할 때 폭력 이후의 침묵을 만들어냈던 폭력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당사자성을 갖고 있으며, 이 가늠할 수 없이 많은 당사자성의 차이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폭력의 피해를 직접 입었던 사람들의 입장과 그들의 곁을 지켜온 활동가들의 입장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를 섣불리 재단할 수 없다. 이 고유한 차이들에 대해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조차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수씨의 기자회견 이후 나는 이용수씨와 윤미향씨의 시간을, 그리고 정대협과 정의연의 역사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있다. 그 말들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호명되었던 이들과 연대하는 자의 당사자성을 성찰하는, 반세기의 침묵을 만들었던 한국 사회의 폭력을 반성하는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담론장의 역사는 50년 동안 침묵의 폭력으로 뒤덮인 시간이었고 이후 30년 동안 타자화의 폭력에 뒤덮인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말을 들어라, 그의 말을 존중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대리 발화’에 나섰다. ‘할머니’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평가하고, 그 속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지 가르치려 들었다. 오직 자신만이, 혹은 자신들만이 ‘할머니’의 말에 담긴 속뜻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이들은 어항 속의 물고기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사람처럼 사태를 관조하는 위치에 있었다. 어항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들에게 ‘나의 일’이 아니며 어항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 역시 그들에게 있지 않다. 잘못은 ‘저들’의 몫이며 ‘나’는 윤리적인 인간이기에 그들은 윤리를 가장하는 온갖 수사를 동원해 ‘당사자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당사자가 아닌 위치에서 당사자의 말을 존중하며 당사자의 말을 대리 발화하는 것이 ‘윤리’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에 앞서 해석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말이 드러나기에 앞서 이 말은 어떤 식으로 해석될지 그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이용수씨와 윤미향씨의 말이 있기에 앞서, ‘정의연’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연대해온 이들의 말이 드러나기에 앞서 이 말들은 이미 구축된 진영의 스펙트럼 안에서 각자의 위치를 갖게 될 어떤 계획 아래 포섭되어 있었다. 이 계획은 정확하게 타자화의 폭력을 구현한다. 누군가를 규정하고 어떤 편견에 가둬 옴짝달싹 없이 묶어둔 채 공격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실행하는 일은 대상을 축소하고 고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소되고 고정된 속성은 대상 고유의 것으로 본질화하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은 타자화의 폭력에 의해 앞서 규정된 내용으로 환원된다. 이럴 때 사태는 단순화되며 맥락의 두께는 얄팍하게 평면화된다.

이용수씨와 윤미향씨는 서로 다른 진영에 의해 공격의 타깃이 되었다. 서로 다른 입장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타자화의 폭력 앞에 모두 공격의 대상일 뿐이며 그 공격을 정당화하는 빌미는 이들의 ‘타락’이다. 언제, 누군가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용수씨는 순수한 피해자로 가정되었고 윤미향씨는 순수하고 윤리적인 활동가로 가정되었다.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상’이기에 이 ‘순수’의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타락’과 ‘불순’의 모든 오명을 쓰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 ‘순수’를 벗어난 ‘타락’은 공격의 이유인 동시에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다.

이용수씨와 윤미향씨에게서 드러난 ‘순수’를 벗어난 ‘타락’의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정치권력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 정치 활동을 계속해왔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장을 옮기는 일일 뿐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겹겹의 정치를 수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가 ‘운동’에 나서고 이 ‘운동’을 통해 정치적 장에 진입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드문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활동가가 제도권 정치로 진입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의 의원들 가운데 이런 ‘운동’의 경력을 발판 삼아 정치에 나선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떤 연구자가 내게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하는 일은 ‘긍정적 일반화’의 대상이 되기 쉬운 데 반해 ‘여성’이 하는 일은 ‘부정적 일반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성’들이 하는 아주 작은 일도 크게 가치를 평가받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반화되는 데 비해, ‘여성’들이 하는 일은 극단적인 부정적 평가를 받고 반대 방향으로 일반화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용수씨와 윤미향씨는 이미 특정 세력을 대리 표상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눔의 집’과 ‘정의기억연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무관심하고 무식해서가 아니라 구분하고 싶지도 않고 구분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윤미향’과 ‘정의연’과 ‘나눔의 집’은 구분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이렇게 해서 수요집회에 나왔던 무수한 사람들과 ‘윤미향’이 아닌 활동가들과 ‘정의연’으로 이어진 30년의 역사,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의 시간이 손쉽게 지워진다. 윤미향씨는 하나의 전형이 되어 ‘타락한 활동가’와 ‘비윤리적인 86세대 정치 세력’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실천적 연대를 보여주었던 여성’들을 대리 표상하게 되었다.

이 논의의 와중에 어떤 이들은 윤미향씨가 국회의원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하자 나서고, 어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를 평가해 보자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침묵하고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말도 이 진영의 구도 안에서 쉽게 쓰였다 버려지는 패가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탐욕, 대구, 횡령, 다섯 채의 집, 가족, 배후, 한일관계, 교류와 화해, 배신과 도구화 등의 말이 지난 30년의 역사를, 그 시간의 아주 작은 끄트머리라도 잡아챌 수 있을까. 그 시간은 윤미향씨의 것도, 이용수씨의 것도, ‘정대협’이나 ‘정의연’의 것도 아니다. 이용수씨도 윤미향씨도 이 운동의 흐름 안에 있는 한 사람일 뿐이며 이들은 다른 모든 운동가가 그러하듯이 오류와 한계를 가질 수 있다. ‘정의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정의연’을 비난하며 그 단체명 앞에 붙이는 모든 수사적 말들을 고스란히 한국 사회 모든 사회운동단체의 앞에 붙여 놓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류나 문제는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으니 대충 묻고 넘어가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의연’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지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운동의 역사에 대한 평가도 모두 필요하고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정치인 윤미향씨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활동가의 위상과 역할, 당사자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산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엄청난 ‘말판’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정작 이런 문제들에 관심이 있어서 한 마디씩의 말을 보태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연세대 젠더연구소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도 내가 보탠 이 한마디 말의 효과가 두렵다. 인터넷 댓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두렵고, 내가 한 말이 이 담론장 안에서 어떤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낼지 가늠할 수 없어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한마디 말을 꺼낸 것은 침묵의 이유를 말하고 싶어서다. 지난 반세기 ‘할머니’들의 침묵을 만들었던 폭력은 여전히 성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앞다투어 말을 내놓는 사람들 뒤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다. 나는 이 침묵을 대리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을 미루어 조심스럽게 짐작한다면 분명 사람들의 말문을 닫게 하는 고통과 분노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엄청난 고통의 흔적을 남긴 애초의 폭력은 지워지고 그 고통의 흔적 때문에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애초의 폭력을 방관하거나 공모했던 이들이 이 싸움을 멋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 논쟁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치 ‘끝난 싸움에 대해 평가하듯이’ 말하거나 ‘싸움이 끝난 후 결실을 두고 다투는 이들을 힐난하듯이’ 말하지만, 침묵하는 이들에게 이 싸움은 전혀 끝나지 않은 일이다. 침묵을 뚫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30년 전에도, 지금도 오롯이 ‘현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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