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4화 개인정보
제4화 개인정보
2020년의 팬데믹 시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국제사회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확진자 동선 공개가 너무 자세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나친 염려일까, 필요한 지적일까? 다행히 정부는 확진자 동선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기로 했다. 익명 검사도 늘렸다. 잘된 일이다.
정보인권이란 말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멀다.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같은 개념은 헌법으로 보장받는 권리지만 이 용어가 낯설다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지루한 설명 대신, <한겨레>에 실린 일화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30여년 동안 어떻게 변했나? 해설 김태권
담겠다고 했던 전자주민카드
주민등록증 대신 들고 다니라고? 탈북 망명한 고위층 인사 이한영
개명하고 성형하고 이사 다녔는데
살해범에게 어떻게 노출되었을까
정보인권 문제를 다룬 시민사회 간담회가 2015년 8월6일에 열렸다. 당대표였던 문재인이 변호사 최병모와 인사한다. 촬영 이정우 기자.
1988년 5월22일치 <한겨레>. 창간 일주일 만에 국가의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때는 정보인권이라는 개념이 낯설었는지 ‘국민사생활’이라는 말을 썼다.
20만 명에게 보낸 생일카드 국가 행정전산망 사업이 막바지이던 1990년. <한겨레>는 “수집된 개인정보가 선거에 악용될” 일을 걱정했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했다. 무려 ‘비밀번호'도 걸었다고 했다. 이걸로 충분할까? 개인정보를 빼돌려 선거에 쓸지 모른다는 걱정은 사실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여당이던 민자당의 어느 정치인은 1년 동안 지역구 유권자 20만명에게 생일축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생일카드를 받은 어린이가 “가족들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내 생일에 축하카드를 보내줘 고맙다”며 답장을 쓴 일도 있다. 그 편지를 또 지역의 민자당 당원끼리 모여 낭독하고 감격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당황스럽다. 개인정보를 털린 쪽도 가져다 쓴 쪽도 이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92년 3월5일치 <한겨레>에 난 기사다. 그때 여당 정치인들은 개인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혹시 국가전산망을 통해? 서울시 공무원의 답변이 실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잘라 말하면서도 ‘일선 행정기관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조순이 길게 출력한 종이 한겨레신문사의 옛 자료를 훑던 중 나는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그때 서울시장이던 조순이 출력한 종이를 보며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무슨 일일까? 1996년 5월15일에 서울시청에서 전자주민카드 시연회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비교해보니 그 행사를 찍은 사진 같다. 그때만 해도 전자주민카드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논쟁을 몰고 올지 몰랐기 때문에, 행사도 사진도 기사화되지 않고 묻혔던 것이다.
유창하 기자가 찍었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1996년 5월15일의 전자주민카드 시연회 사진이다. 조순의 개인정보를 담은 카드를 만든 다음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휴대용 단말기로 출력해 보였다. 조순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내 개인정보로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묻는 듯하다.
이종근 기자가 구한 폐회로(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 사진이 <한겨레> 1997년 2월28일치에 실렸다. 그러나 이한영을 죽인 범인은 잡지 못했다. 2월24일치 기사에 따르면 “폐쇄회로 화면 사진이 쓸 만한 단서였다면 안기부가 경찰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들이 결판을 냈을 것”이라며 경찰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상품으로 둔갑한 선거인명부 1992년에는 공무원이 우리 개인정보를 가져다 정치인에게 넘겼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였다.(적어도 그랬다는 의혹을 받았다.) 1998년의 상황은 그때와 닮았지만 다르다.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건네준 선거인명부가 엉뚱하게 ‘상품’으로 둔갑”한다. 비싼 값을 치르고 우리 개인정보를 사가는 쪽은 통신판매업자다. 더 큰 돈을 벌고 싶어서다.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긴 선거인명부 사본이다. 여기 전화번호를 추가하면 통신판매업체가 반기는 ‘완벽한’ 상품이 되어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이정용 기자가 찍은 사진이 1998년 6월3일치에 실렸다.
네이스에 반대하는 중학교 교사가 2003년 6월9일에 정보인권에 대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기자들이 취재하러 오자 이 학교 교감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교감은 찬성파였다. 표정에 드러난 분한 감정이 무시무시하다. 이정우 기자가 찍었다.
청테이프로 가린 국회 카메라 세상은 변했다. 내 개인정보를 더 간절히 원하는 곳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업체들은 내 개인정보를 달라고 했다. 대신 당장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편하고 안전하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많이 있을까. 하지만 내 개인정보를 가져다 어디에 쓰려는지 내가 모른다는 점은 문제다. 1999년 8월24일치 기사에 소개된 회사원 김영만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머리가 빠져 걱정이었단다. 그래서 대머리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대머리 예방약을 선전하는 전자우편이 오더라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출산을 앞둔 아내한테 “육아용품을 선전하는 메일”이 자주 오자 김영만은 섬뜩함을 느꼈다. “말이 좋아 ‘맞춤 서비스’지 자신의 신상정보들이 어떻게 이용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당신의 정보 안전합니까.” 1999년 8월24일치 <한겨레> 기사의 제목이다. 다음 문장을 읽고 나는 놀랐다. “인터넷 업체의 가장 큰 자산은 회원들의 개인정보다.” 20년 전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가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장면을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21> 2005년 3월15일치에 실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의 사진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김문수와 이재오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카메라에 청테이프를 두르고 문에 못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국회 직원이 화가 났다. 청테이프 감긴 카메라를 사진 찍어 한겨레신문사로 보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촬영자 이름이 ‘독자 제보’로 등록되어 있다.
폐회로텔레비전은 독인가 약인가 폐회로텔레비전은 인권을 침해하기도 하고 지켜주기도 한다.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서울 양천경찰서는 절도 행위를 자백받겠다며 피의자 20여명을 고문했다. 재갈을 물린 채 머리를 밟거나 수갑을 채운 채 팔을 꺾었다. 뼈가 부러지고 보철한 이빨이 깨지기도 했다. “카메라 방향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 사무실에 사각지대가 있다.” 그 사각지대에 긴 의자를 놓고 피의자들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로 밝힌 사실이다. <한겨레> 2010년 6월17일치에 크게 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공한 양천경찰서 폐회로텔레비전 사진이다. 사각지대를 만들기 위해 천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이 사건에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다. 2012년 5월9일치에는 “예전의 절도 습관을 버리지 못해” 고문 피해자 두명이 또 도둑질을 하다 잡혀갔다고 했다. 기사 제목은 “빈집털이범 잡고 보니 ‘양천서 고문' 피해자”.
‘황연성 교사의 디베이트 정복’ 2012년 6월18일치에 함께 실린 사진이다. 원래 서울 전곡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교 안에서 폭력이나 납치 사건이 일어나지 않나’ 교무실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을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종근 기자가 찍었다.
섬뜩한 상상 2010년에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2019년 1월21일치 <한겨레>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인터뷰가 실렸다. “정보권력의 균형이 개인이 아니라 회사나 국가 같은 큰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정보가 수집당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얻는 편리함은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처음 소개한 1988년의 일화를 다시 살펴보자. 한씨는 왜 굳이 파출소에 가 기분 나쁜 일을 겪었는가? 그때는 서류를 하나 떼려 해도 관공서를 하나하나 발품 팔고 다녀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온갖 업무를 앉은 자리에서 해결하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가끔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오면 나는 섬뜩한 상상을 한다. 어디서 누가 내 개인정보로 무슨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책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지은이 안드레아스 와이겐드가 한국을 찾았다. <한겨레>의 구본권 기자가 인터뷰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보인권 운동에 앞장선 진보네트워크센터가 2018년에 스무돌을 맞았다. “사려 깊고 열정적인 당신이 세상을 바꿉니다”가 창립 때 캐치프레이즈였다. 오병일 대표의 인터뷰가 <한겨레> 2019년 2월27일치에 실렸다.
최근 데이터 3법이 통과되었다. 기업 쪽의 여론조사 결과가 시민단체의 것과 반대로 나왔다. 민감한 주제다 보니 질문이 어떠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설문 문항을 밝히라는 요청을 받자 기업 쪽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어땠길래? 2020년 5월19일치 <한겨레>에 실린 인포그래픽이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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