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추모기획단(기획단)에서 연 ‘이한열 문화제 온라인 전시회’ 갈무리
‘하얗게 차오르는 연기가 모두를 막아도 자유를 향한 의지는 절대 꺼지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날아온 최루탄에 하나의 촛불에서 빨간색 피가 흐르네’ (서제후·이제호·김채영 <자랑스러운 연세대학교 선배님 고 이한열 열사에게 바치는 노래>)
1987년 6월9일, 21살 이한열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앞에서 전두환 군사정권 반대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졌다. 33년이 지난 뒤 21살 연세대학생 이성우씨는 그를 기리는 시 <한열>을 썼다. 이씨는 시에서 “닿은 적 없는 봄이 그리운 유월 광야를 울리는 그의 음성을 기억하오!”, “봄을 좇던 여름 꽃-한열은 늦은 봄을 깨워내고 멀리멀리 떠났소”라고 썼다.
고 이한열 열사 33주기를 맞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 학생들로 이뤄진 이한열추모기획단(기획단)은 지난 1일부터 9일까지를 ‘이한열 열사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기획단은 ‘이한열 문화제 온라인 전시회
’(☞바로가기)를 개최하는 등 온라인에서 추모 행동을 이어갔다.
전시회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 열사의 열망을 담은 작품 30여개가 출품됐다. 추모랩으로 1등을 차지한 서제후(20)씨는 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지금 내가 랩을 통해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이 열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55살일 이 열사의 모습을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능소화와 함께 그려낸 오신영(21)씨는 “이한열 열사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 피격 당시나 20대 때 증명사진이다. 이 열사가 잔인한 진압에 희생되지 않았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사람이었을지 궁금했다”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 열사가 희생당했을 때와 나이가 같은 오씨는 “민주주의에 대한 당시 이 열사의 열정을 지금 시대로 승화해 되새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림 <그대 없는 서른세 번째 봄, 그대 미소 꽃피우고 능소화가 만개하리>. 오신영씨 제공
이들에게 이 열사는 어떤 의미일까. 시화 <한열>의 그림을 그린 최민주(21)씨는 “이 열사가 돌아가신 때 나이가 지금 저의 나이와 같다. 이번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 열사에 대해 공부를 더 하게 됐는데, 진심을 다해 내 모든 걸 바쳐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 게 멋있어 다시금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와 같은 작품에서 시를 쓴 이씨는 “이 열사의 시 <한 알의 씨앗이 광야를 불사르다>에서 영감을 얻어 당시 이 열사의 마음으로 시를 썼다. 운동가로서의 이한열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그의 시에 대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획단은 추모기간 마지막인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열사의 추모 사진을 올리는 ‘릴레이 추모 행동’도 이어갔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이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고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에게 경찰을 대표해 사과했다. 이날 정복 차림으로 추모식에 모습을 나타낸 민 청장은 배씨에게 다가가 “너무 늦었습니다. 저희도 참회합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이한열 열사 유족을 직접 만나 사과의 뜻을 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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