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 관여 혐의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9일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고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가 확보되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사기적 부정거래와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공을 들인 검찰의 수사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를 중심으로 경영권 불법 승계를 둘러싼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로 소명된 건지 짚어봤다.
■ 바이오젠 동의 없이 발표된 ‘에피스 상장’…자본시장법 위반 ‘핵심’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전날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이 주가부양을 위한 ‘허위 발표’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제시했다. 삼성이 에피스의 투자합작사인 미국의 제약회사 바이오젠과의 협상 결렬로 2014년 말∼2015년 초께 ‘당분간 상장은 힘들다’고 결론내린 문건을 다수 확보한 것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업체인 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합작해 만든 회사다. 바이오젠이 원하는 시점에 에피스 지분의 절반 가량을 싼 값에 사들일 권리(콜옵션)와 경영동의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장을 하려면 바이오젠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검찰은 삼성이 합병을 앞두고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발표 시점을 ‘2015년 7월 초’로 특정한 문건도 확보했다.(관련기사 :
[단독]삼성, 물산 합병때 주가 띄우려 ‘에피스 나스닥 상장’ 발표했다) 바이오젠은 동의 없이 이뤄진 상장 발표에 삼성 쪽에 항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 뒤 고한승 에피스 대표가 직접 미국의 바이오젠 본사까지 찾아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협상이 결렬돼 그해 11월 상장은 최종 불발됐다. 이 부회장은 고 대표로부터 협상 경과를 지속적으로 보고받았고, 나스닥 상장 논의를 위해 바이오젠 대표와 직접 통화까지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은 ‘에피스 나스닥 허위 상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혐의의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
■ 승계작업 담긴 ‘프로젝트 G’와 수백개의 미전실 ‘직보’ 문건
전날 검찰은 이 부회장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부회장이 불법 승계 과정을 보고받았다는 다수의 물증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12년 미래전략실 핵심들이 승계작업을 위한 ‘티에프(TF)’를 구성했고, 논의 내용을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앞글자)’라는 문건으로 수년간 정리해온 내용을 확보했다. ‘프로젝트 지’에는 에버랜드·전자·물산이 바이오사업을 나눠갖되 전자와 물산은 유상증자 참여를 포기해 이 부회장이 대주주인 에버랜드가 바이오사업을 온전히 보유하게 하는 방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그룹 내 매출 비중이 높은 식자재 사업을 다른 사업으로 넘기는 방안 등 각종 승계 관련 구상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지난 5∼6년간 ‘이 부회장님 보고 필’이라고 적힌 현안 관련 보고 등 미전실 문건 수백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문건에는 이 부회장이 수정 지시한 내용과 수정 뒤 재보고 경과까지 세세하게 담겨있고, 이 부회장은 이런 문건들을 본인의 전자우편으로 직접 보고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도 검찰 조사에서 이 부회장 보고 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 ‘삼정 보고문건’,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스모킹 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건은 삼정회계법인의 보고 문건이 뒷받침했다. (관련 기사 :
[단독] 삼정 “삼바 부채 누락” 결론내고도…삼성물산에 분식회계 제안) 통합 삼성물산 탄생 직후인 2015년 9월과 11월, 삼성바이오의 외부감사인이었던 삼정 회계법인이 삼성물산에 보낸 보고문건에는 합병 결의 전 진행된 회계감사에서 삼정이 콜옵션 조항을 확인하기 위해 합작계약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는 내용과, 삼정이 콜옵션 부채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소급해서 반영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내용이 담겨있다. 삼성은 금융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콜옵션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지 않았고, 회계법인과 콜옵션 조항 내용을 투명하게 공유했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를 모두 뒤집는 ‘물증’인 셈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자신의 주력업종으로 여겨 설립 당시부터 그 경영 상황을 세세하게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바이오와 에피스가 설립될 당시의 지분구조와 회계처리 방식, 분식회계가 이뤄진 2015년을 포함해 2016년·2017년까지의 경영의 세세한 부분을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고한승 에피스 대표로부터 ‘직보’받은 내역들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영권 승계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수적 효과”라고 반박했다. ‘에피스 나스닥 허위 상장 발표’에 대해서도 “삼성에피스 나스닥 상장을 실제로 추진했고, 그에 따라 발표한 것”이라고,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에 대해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게 처리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