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은 10일 서울 관악구 박종철거리에 설치된 `박종철벤치'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벤치 가운데엔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란 문구를 새겨져 있다. 박 열사가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 중 구속된 상태에서 쓴 편지 중 일부다. 백소아 기자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받은 추모 문구를 나무에 달고 있다. 백소아 기자
고 박종철 열사.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 언어학과 동기들과 함께한 박종철(앞줄 가운데).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1월 하숙집 선후배들과 백마(일산)로 수련회를 갔을 때의 박종철씨.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1월초 박종철 씨가 하숙집 친구들과 경기도 일산 백마의 한 민속주점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으로,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하숙집 선배였던 하종문 한신대 교수가 보관해왔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1월26일 박종철씨 추모미사가 끝난 뒤 신부,수녀,신자 등이 성당 정문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2월 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추도회. 연합뉴스
박종철 열사 25주기인 2012년 1월 14일 오후 서울 갈월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아버지 박정기씨가 추도식을 마친 뒤 아들이 물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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