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로 부풀린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임원들이 타간 10억원대 성과급을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조원대 분식회계가 적발됐어도 이에 따른 성과급을 환수할 근거가 없다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대우조선 전직 임원들의 부당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민사2부(재판장 남양우)는 대우조선이 정아무개 부사장 등 전·현직 임원 7명을 상대로 ‘2012년 부당하게 지급받은 성과급을 돌려달라’고 낸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앞서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대우조선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했다. 2012년 경영평가에서 대우조선은 70.91점을 받아 F등급(성과급 지급률 50%)에 해당하는 35억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그러나 2016년 감사원 감사 결과 대우조선의 실제 평점은 70점에 미달하는 G등급으로 성과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과급 수령은 2012년 3084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13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고 회계를 조작한 결과였다. 대우조선은 같은해 7월 ‘8대 쇄신 플랜’을 발표하며 부당하게 지급된 임원 성과급을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과급을 받은 임원 69명 가운데 이미 40여명이 퇴직했고 이들이 반납을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환수가 쉽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창원지법 통영지원 민사1부(재판장 김희철)는 지난해 10월 “성과급 환수에 필요한 법률상 근거도 없고 임원들과 대우조선이 맺은 계약에 성과급 환수 조항도 없다”며 임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2심 재판에서 변수가 등장했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회사 사이에 체결된 양해각서에 ‘당기순손실 발생 시 성과급 미지급’이라고 명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양해각서에 대우조선에 당기순손실이 발생할 경우 임원들에 대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규정돼 있는데, 2012년도에 대우조선에 3084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대우조선의 2012년도 성과급 지급은 그 요건이 흠결되었다”며 “퇴직 임원들이 받은 성과급 5억원은 부당이득이므로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이미 지급한 성과급을 소급해서 환수하는 건 부당하다는 임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해 이익을 얻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가 그 이익을 반환하는 것은 민법 741조(부당이득 조항)에 따른 의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함께 진행된 또 다른 대우조선 퇴직 임원 30여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성과급 12억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016년 감사원 감사에서 대우조선이 2013~2014년에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밝혀져, 이번 판결에서 인용된 양해각서 조항을 적용하면 환수할 수 있는 퇴직 임원의 성과급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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