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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퀴어축제 참석한 목사 재판 회부한 교회…‘동성애 처벌’ 규정 논란

등록 2020-06-21 11:09수정 2020-06-21 11:24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 지난해 인천퀴어축제 ‘성소수자 축복식’ 참석했다가
“동성애 찬성했다” 교회 재판에 회부
“성소수자들 숨죽이게 만드는 차별 악법 개정돼야”
지난해 8월31일 인천 부평구에서 열린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 집례자로 선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 ‘주피터’ 제공
지난해 8월31일 인천 부평구에서 열린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 집례자로 선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 ‘주피터’ 제공

지난해 성소수자 축제에 참석한 목사가 동성애를 찬성했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에 서게 됐다. 감리교 내 헌법과 같은 ‘교리와 장정'은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면직·출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심사위원회(심사위)는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해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를 재판에 회부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목사는 지난해 8월31일 인천 부평구에서 열린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 집례자로 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고, 이들을 환대한다는 의미로 꽃잎을 뿌렸다. 이후 일부 교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졌다. 이 목사의 행동이 감리교 재판법 제3조8항에서 금지하는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부터 이번달 10일까지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쳐 이 목사를 불러 경위서를 요구하는 등 “동성애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 목사가 낸 경위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도저히 교회에서 밝히지 못하고 이런 축제에 찾아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저를 그 자리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목숨을 끊지 말고, 자신의 성향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어떤 모습이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그리고 그분의 빛 가운데 죄사함과 자유함을 얻자고 간곡한 마음으로 권면하고 축복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교단의 법을 어기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추후 감리사님과 지방 여러 목사님들의 지도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는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자격심사위에선 주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동성애를 찬성하냐, 반대하냐’고 집요하게 추궁했다. 그럴 때마다 ‘동성애는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심사자격위는 이 목사에게 아예 동성애 찬성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한 사안에 대해서 죄라거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하는 조항을 어긴 것에 대해 각서를 써서 타협을 함으로써 처벌을 피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 각서를 절대 쓸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지난해 12월 자격심사위에 각서 대신 제출한 ‘각서에 대신하여'라는 글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교회 안팎의 목회사역, 선교사역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이며 구원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목회신념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다시는 그런 사역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것은 아마도 거짓으로 작성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썼다.

아예 교인 자격을 박탈시킬 수도 있는 재판에 이 목사를 서게 만든 감리교법 조항에 대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감리교인이 동성애를 찬성하는 행위를 하면 정직·면직·출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 이 조항은 2015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감리교 내 성소수자 단체를 중심으로 신설 반대 움직임이 일었으며, 조항이 만들어진 뒤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성소수자 관련 행사가 이 조항을 이유로 취소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에 재판을 통해 이 목사가 처벌을 받게 되면 ‘동성애 찬성’을 이유로 교인이 교회 내에서 처벌을 받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

이 목사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숨죽이며 사는 성소수자가 교회 안에 많은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를 쫓아낼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겠나. 이런 법이 심지어 힘있는 소수에 의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반드시 철폐 또는 개정돼야 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저의 재판도 중요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이 법이 반드시 개정되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목사는 “아무리 종교라고 해도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배제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잘 제어하는 역할을 차별금지법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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