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심의위)’ 결정을 근거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관이 자체적으로 심의위를 구성해 내린 결론인 만큼 근로자의 기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기간제 근로자였던 오아무개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2017년 7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연중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계속될 업무에 종사하는 등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다만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각 기관에서 정규직 전환 심의위를 꾸려 전환 대상을 결정하도록 했다. 당시 오씨는 인권위에서 아동인권 모니터링을 담당했고, 심의위는 그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인권위와 기획재정부는 오씨를 포함한 정규직 전환 대상자 4명의 업무 내용이 상시·지속적 업무의 기준과 관련된 정부 지침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이들의 임금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오씨 등은 근로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고, 이에 불복한 오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업무의 상시·지속성에 관한 정부 지침에 앞서 심의위가 내린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심의위는 오씨를 포함한 10명의 기간제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위 내부적으로도 오씨가 수행하던 모니터링 사업이 정규직 전환 조건에 해당하는 상시·지속적 업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며 “이러한 심의위 결정은 정부 지침의 취지에 따라 해당 업무의 성질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내린 판단인 만큼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심의위가 오씨의 업무 내용이 상시성과 지속성을 모두 갖는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이를 뒤집고 정부 지침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도 했다. 해당 지침은 정규직 전환 기준의 ‘최소한의 수준’에 해당하고, 심의위 결정을 거쳐 더 넓은 범위의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심의위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오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여는 김형규 변호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리를 적극 보호해야 할 인권위의 본분에 따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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