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들머리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사진 가운데)이 복직 촉구 기자회견에 앞서 동지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민주노조와 조합원이 있는 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23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60)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에 복직을 촉구하며 한 말이다. 올해가 정년인 김 지도위원은 복직이 되지 않는다면 한진중공업의 영원한 해고자가 된다. 2년여 전 암에 걸린 뒤 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이 복직에 나선 이유다.
1981년 21살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당시 노예에 가까운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부당함을 느꼈다. 김 지도위원은 1986년 2월 ‘23차 대의원대회’를 다녀온 뒤 당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홍보물 150여장을 배포했다. 이어 같은해 5월20일부터 7월2일까지 부산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돼 세차례 조사를 받았다. 회사는 김 지도위원을 직업훈련소로 발령냈다. 이에 항의하자 회사는 1986년 7월14일 ‘상사명령 불복종’으로 김 지도위원을 해고했다. 한진중공업은 1989년 경영난을 겪던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했다.
해고자가 된 김 지도위원은 노동운동에 앞장섰다. 2003년 한진중공업 노사가 김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를 논의했지만, 그는 자신의 복직보다 다른 조합원의 복직을 먼저 요구하는 등 노동운동에 몰두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김진숙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2011년 1월6일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맞서 영도조선소 안의 85호 크레인(높이 35m)에서 올라갔고, 같은 해 11월10일까지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누리꾼과 시민들은 김 지도위원을 지지했다. 시민들은 그를 응원하려고 ‘희망 버스’를 만들어 여러 차례 영도조선소로 향했다. 어렵게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의함에 따라 크레인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여전히 해고 노동자였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12월23일 암 투병을 하면서도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고 대구까지 111㎞ 도보 행진에 나섰다. 영남대의료원 본관 옥상에서 명예회복과 원직 복직을 주장하며 고공농성을 벌이는 박문진 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그와 함께했다. 첫날 8명이었던 일행은 영남대의료원에 도착한 같은 달 29일에는 200여명으로 불어났다. 영남대의료원은 지난 2월, 13년 만에 박 지도위원의 복직에 합의했다.
이제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김 지도위원만 남았다.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는 23일 한진중 영도조선소 들머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진중공업은 해고 노동자인 김 지도위원을 복직하라”고 촉구했다. 심진호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장은 “이제는 김 지도위원이 원래 자리였던 용접 노동자로 돌아와야 한다. 출근 투쟁 등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35년 동안 복직하겠다는 꿈을 포기한 적은 없다. 이제는 마지막 해고자인 내가 영원한 해고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23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들머리에서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3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들머리에서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