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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수자의 존재에도 이유가 필요한지

등록 2020-06-27 08:12수정 2020-06-27 09:57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22. 게임 속 소수자들, ‘라스트 오브 어스 2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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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너티독이 개발한 ‘라스트 오브 어스’는 우리 시대의 명작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임이다. 의문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감염시켜 좀비와 비슷한 생명체로 만들어버린 세상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지나 6월19일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세상에 나왔다. 많은 수의 게임 웹진들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부여하며 1편을 잇는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이 발매되고 나서는 이 게임을 둘러싼 논란들이 불타오르고 있다.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매체들의 평균 점수는 94점이지만, 게이머들이 매긴 점수는 고작 4.5점(즉 45점)이다. 특히 1편의 팬들이 후속작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며 이른바 ‘비추 폭탄’을 날리는 중이다.

게임은 정말로 취향을 많이 타는 매체다. 게다가 하나의 게임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안 해본 게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삼가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게임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그간 게이머들이 특정한 문제들에 보여온 하나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른바 ‘개연성’ 문제다.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주인공인 앨리는 19살이 된 여성이고, 레즈비언이다. 그 외에도 이 게임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이 게임에 대한 비판 중에는 그러한 인물들과 정체성의 문제들이 ‘개연성 없이’ 등장한다거나, 게이머에게 그런 문제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비슷한 사례들이 이전에도 있었다.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는 등장 캐릭터인 트레이서와 솔저76가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발표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특히 터프한 중년의 남성 군인인 솔저76가 게이라는 것은 뜬금없고 ‘개연성이 없다’는 주장이 많았다. 라이엇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바루스라는 캐릭터가 리부트 과정에서 동성애자라는 설정이 추가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설정이 수정되어왔다. 그러나 온갖 마법과 초과학이 난무하는 소환사의 협곡에서도 동성애는 ‘개연성이 없는’ 일이었다.

게임업계는 오랜 시간 동안 젠더나 인권 문제들에 그다지 잘 대처하지 못했다. 많은 게임이 남자 주인공에 이입하여 호색하고 강력한 영웅이 되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흐름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짧은 게임의 역사 속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따라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하는 제작사의 방식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여전히 업계의 많은 부분,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는 이런 서툰 시도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연성에 대한 불만들에는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나 소수자에 대한 묘사가 너무 뜬금없고 전시하듯 등장한다는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섞여 있다. 하지만 불만의 많은 부분은 그 사회의 주류인 이들이 ‘내’가 느끼기에 불편하고, ‘내’가 이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이 윤리학 교과서가 될 필요는 없다. 만약 이런 매체들마저 엄중한 현실이나 올바름만을 강조한다면 인간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불만과 불안과 실현되지 않는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착취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면, 그래서 현실의 존재들에게 위해를 끼치기 시작한다면 즐기던 것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지 토론해야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와 영향력을 지닌 매체다. 게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모두 ‘외적의 침입’으로 받아들여서는, 발전과 변화의 걸림돌이나 될 수 있을 뿐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게임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게임들이 충분히 개연성 있게 세상을 묘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선후 관계가 바뀌어선 안 된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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