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신호를 받은 119 구조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참혹한 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구급 업무를 하다가 정신질환을 앓아 극단적 선택에 이른 소방관이 순직으로 인정받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숨진 소방관 ㄱ씨의 부인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1992년 소방관으로 임용된 ㄱ씨는 2015년 사망할 때까지 약 12년 동안 구급 업무를 담당했다. 구급 업무는 화재 진압보다 출동 건수가 많았고 특히 ㄱ씨는 2010년 한 해 동안에는 20여차례 참혹한 사고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다. 이후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ㄱ씨는 구급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바람대로 잠시 다른 업무를 맡게 됐다.
하지만 6개월만인 2015년 2월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구급대원의 배치율을 높이려는 인사 조처로 다시 구급 업무에 복귀하게 된 ㄱ씨는 같은 해 4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유족은 ㄱ씨가 구급 업무 등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다며 순직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가 ‘ㄱ씨의 사망은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부지급 처분을 내리자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충분하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어 “ㄱ씨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구급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적절한 조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