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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정원의 인혁당 피해자 ‘빚고문’…법원 조정 권고도 불응

등록 2020-07-06 20:12수정 2020-07-06 21:33

피해자 이창복씨, 정부 상대 청구이의 소송
2심서 양자간 조정 갈음 결정에도
국정원 “동의할 합리적 근거 없어”
국가배상금 환수 기존 방침 유지

인혁당 무죄 이끈 김형태 변호사
“청와대와 법무부가 손놓고 있어
가해자가 칼자루 휘두르는 형국”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017년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이 경매에 부쳐져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선 기자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017년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이 경매에 부쳐져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선 기자

법원이 197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이창복(82) 선생이 재심 무죄 판결 뒤 가지급받은 국가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책임을 일부 덜어낼 수 있도록 조정안을 냈지만, 국가정보원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과거사 피해자들이 받은 배상금을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해온 국정원이 여전히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민사9부 손철우 부장판사는 이 선생이 정부를 상대로 낸 청구이의 소송 항소심에서 양쪽 조정으로 갈음하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 선생이 반환해야 할 배상액 중 이자는 면제하고 원금 4억9천만원 중 2500만원을 먼저 내면 국정원이 이미 신청한 경매를 취하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손 부장판사는 “(이 선생이) 평생 겪은 고통과 아픔이 국가배상제도만으로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부당이득금 판결에 근거한 강제집행을 한다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원고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조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1심에서 국가가 전부 승소했고 이미 다른 채무자들의 임의변제와 강제집행이 일부 완료된 상황에서 조정에 동의할 법적·합리적 근거가 없다”며 조정안을 거부했다. 조정이 좌절된 이상 판결 선고를 받게 되면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선생은 패소할 확률이 크다.

이 선생이 국정원의 강제경매집행에 이의를 제기하며 낸 소송은 2013년 국정원의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에서 비롯됐다.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인혁당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고, 이 선생은 총 배상액인 16억 3천500여만원의 65%인 10억9천만원을 가지급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2011년 “배상금이 과다 책정됐다”며 지연손해금 발생 시점을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이 아닌 손해배상 소송 변론 종결일로 바꾸면서 이씨가 받아야 할 34년치 이자가 사라졌다. 그 결과 배상액은 6억여원으로 쪼그라들었고 국정원이 반환금을 받아내기 위해 그의 집을 경매로 넘긴 것이다. 대법원 판결 뒤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기간에 연 20% 이자가 붙어 국정원에 대한 이 선생의 ‘빚’은 약 13억원으로 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무고한 시민을 국가전복 음모 세력으로 몰아 옥고를 치르게 한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이 대법 판결을 근거로 피해자들의 배상금 환수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지난 3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유족들 구제방안을 마련하는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해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볼 때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는 물론 국가소송 수행자인 법무부도 가해 당사자인 국정원에게 변제를 떠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혁당 재건위 재심 무죄를 이끌어낸 김형태 변호사는 “원금을 갚겠다는 이 선생 뜻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국정원은 사실상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는 국가 소송의 최종 책임을 지는 기관임에도 역할을 하지 않고, 청와대도 과거사 문제를 풀어줘야 하는데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조정) 수용 여부에 대해 해당 기관(국정원)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소가가 10억원 미만이면 법무부 승인 대상이 아니어서 법무부에서 답변을 주기 어렵다”고만 밝혔다.

현재 부동산 경매나 압류 조처를 받게 된 인혁당 피해자는 이 선생을 포함해 11명가량이다. 앞서 고 정만진씨의 부인인 추국향씨도 법원의 조정안을 받았지만 국정원이 “조정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가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저버려 배임이 성립할 수 있다”며 항소해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선생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곧 눈을 감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생 막바지에 거리에 앉게 된다면 그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국가에서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담하리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국가인가”라고 말했다. 오는 16일 이 사건의 항소심 선고가 나온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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