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북 경주시청 앞에서 경북노동인권센터 등 경주지역 16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해 경주시에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지역체육회와 공무원, 감독의 ‘3자 카르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계기로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실업팀을 둘러싼 ‘3자 카르텔’이 주목받고 있다. 성적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폭력 행위 등의 문제가 생겨도 묵인하거나 은폐해온 구조적 관행이 최 선수 사망의 궁극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7일 체육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 선수가 소속됐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경주시청이 직접 운영하며,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모두 연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 계약의 주체는 단체장과 지도자, 선수이지만 이 과정을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것은 공무원이다. 주로 문화관광국 하위부서의 담당자가 주무를 맡는데, 계약을 맺을 때의 평가자료는 전국체전 등의 성적일 수밖에 없다. 예산을 집행하지만 관리감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 지자체 체육예산 중앙정부의 2배
지역 실업팀의 또 다른 형태는 지역체육회 소속 팀인데, 이들도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한다. 이 경우 실무를 담당하는 총책은 지방체육회 사무처장과 실무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체육업무만 전담하기 때문에 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들을 수 있지만, 사무처장이나 감독 등이 인적으로 연결돼 있다면, 팀 내부의 부조리한 상황이 내부에서 묻힐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우리나라 엘리트체육에서 지자체와 지역체육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낸 ‘2017 한국의 체육지표’를 보면, 지자체의 연간 체육예산은 4조1686억원으로 지자체 전체 예산의 1.52%를 차지한다. 중앙정부 체육예산(1조5175억원)의 두배가 넘는다.
하지만 성적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는 관행과 지자체 공무원들의 무관심, 지역체육회 관리감독의 한계, 전국체전 성적에 목매는 지도자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밑바닥에 존재하는 선수한테 모순의 하중이 집중된다. 제도적 통제가 이뤄지는 학교나 보는 눈이 많은 프로와 달리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팀을 이끌 만한 지도자가 많지 않은 비인기 종목에서는 감독의 입김이 더 세다. 최 선수가 소속됐던 경주시청팀이 그런 경우였다. 지난해 뉴질랜드 전지훈련 녹취록에 등장하는 트레이너가 “우리가 이 종목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체육시민연대, 인권과 스포츠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엘리트 중심 체육정책의 실패
물론 지방체육회는 연간 수십차례에 걸쳐 폭력과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오랜 기간 맞으면서 성장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 경우가 있고, 때리면 즉시 효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일부 지도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주시체육회가 가해자들에 대해, “혐의가 확인 안 된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대한철인3종협회가 “피해자들의 증언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며 가해 지도자와 선수에게 최고 수준 징계인 ‘영구 제명’을 결정했고, 경찰 쪽도 “이들에게 폭행 등의 피해를 당했다고 하는 전·현직 선수 10여명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
최 선수가 폭행 사실에 대한 폭로를 고민할 때 체육회가 아닌 경찰 고소를 먼저 고민했던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사건이 알려진 뒤에 선수들 사이에선 “(지역 체육계가) 선수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을 정도다. 한 대학의 체육과 교수는 “그동안 노출되지 않았던 실업팀의 문제는 한국의 엘리트 중심 체육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금 이준희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