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피해 사실을 일관적으로 진술했다면, 무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은 13일 강간·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아무개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7년 7월 스마트폰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피해 여성 ㄱ씨를 알게 돼 두 차례 만났다. 세 번째 만남에서 이씨는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며 자신의 차에 딴 ㄱ씨에게 욕설과 폭언을 한 데 이어 모텔로 이동해 그곳에서 ㄱ씨를 성폭행했다.
1심은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임에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8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5년간 신상정보 공개, 5년간 아동 및 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명령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ㄱ씨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성폭행 당시 자신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에 대한 ㄱ씨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범행 당시 어떻게 반항했는지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으며 △화장실 문 형태에 관한 설명이 실제 모텔 객실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 데다 △모텔 업주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을 들며 “이씨가 ㄱ씨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해 간음했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의 이런 판단에 대법원은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수적 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을 느낀 상태인 ㄱ씨가 당시 행적 전반에 대해 상세히 진술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또 “(성폭행과 관련한) 진술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될 뿐만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라며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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