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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문] 박원순 피해자 “두렵고 무거운 마음…법의 보호 받고 싶었다”

등록 2020-07-13 15:07수정 2020-07-17 14:43

여성단체, 피해자 글 대독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꿈꿨다”
“저와 가족의 일상과 안전이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피해여성의 편지를 대독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피해여성의 편지를 대독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가 처음 입장을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글을 대독했다. 그는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소식을 접했던 당시의 심정과 ‘신상 털기’ 등 2차 가해로 인한 괴로움, 성폭력 해결을 위해 나선 이유 등에 대해서 전했다.

피해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련했고 너무 후회스럽다”며 글을 열었다. 그는 “처음 그때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지금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털어놓았다.

고소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선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박원순 시장)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선 “너무 실망스럽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용기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의 존엄을 내려놓았다”고 회상했다. 또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며 “그래서 (박 시장의 선택이)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연구소 소장이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에 대한 연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이정아 기자
이미경 한국성폭력연구소 소장이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에 대한 연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이정아 기자
성폭력 해결 촉구를 위해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다”면서도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고 호소했다.

또 “진실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며 “저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저와 제 가족의 보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박 시장의 선택을 피해 호소인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 등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 시장의 장례를 5일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한다’며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13일 오전 5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은 상태다.

아래는 피해자 글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보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윤경 강재구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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