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에서도 인구 1만명당 의원 수가 강남구와 강북구가 두배 정도 차이가 나는 등 보건의료자원의 불균형이 지역별 건강불평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왼쪽)와 성북구의 삼양로 주변의 항공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3인 사례진단…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① 동네따라 수명 다르다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① 동네따라 수명 다르다
저소득층 ‘웰빙’ 은 남 얘기… 부유층은 배려 속 임종 사회계층별로 사망 원인이 다르다. 췌장암은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가 크지 않은 질병인 데 반해, 폐암과 알코올 관련 사망은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서울 중랑구 조길자씨의 경우 중랑구 조길자씨의 사망 원인은 흡연으로 보인다. 폐암 원인의 80~90%가 흡연이고, 20년 넘은 조씨의 흡연력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담배를 피울 동안만이라도 조씨는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니코틴이 그러한 신경자극 효과를 제공했을 것이다. 조씨는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금연 캠페인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흡연 습관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담배를 끊을 절실한 동기가 없었을 수 있다. ‘오래 산다’는 가치는 정말로 낮은 사회계층과 높은 사회계층에게 동일한 가치를 갖는가?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의 가치는 높은 사회계층에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다. 만약 조씨가 생전에 로또에 당첨됐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금연에 대한 매우 큰 동기가 생겼을 것이다. 조씨에게 이제 세상은 ‘힘겹게 버텨야 하는 곳’에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남 진도군 백만길씨의 경우 백만길씨의 의학적 사망 원인은 가족들의 말을 들으면 “명확하지 않다.” 불명확한 사망 원인은 대체로 낮은 사회계층에게 집중된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족들은 백만길씨의 건강에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매일 술을 마신 백씨는 의학적으로 간경화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간과 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간경화로 간정맥이 막혀 식도 쪽의 정맥이 부풀어 오르는 식도류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식도류가 터져 사망했을 수도 있고, 간성혼수로 숨졌을 수도 있다.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우리나라에서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애초 백씨가 우리나라에 흔한 B형 간염을 앓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만약 B형 간염도 갖고 있었다면, 매일 마시던 술과 함께 죽음을 더욱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간경화인지 간염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먹고살기에도 바쁜 가족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백씨의 건강이 아니라, 백씨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기여하느냐다.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이나 금연 클리닉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백씨는 왜 술과 담배로 살았을까? 백만길씨의 키는 180㎝로 아마도 어릴 적의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키는 어릴 적의 영양상태를 반영한다. 하지만 백씨의 청·장년기는 그리 좋은 삶이 아니었다. 백씨는 장사도 잘 되지 않는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으면서, 술과 담배를 친구 삼았다. 담배와 술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중독성은 일상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도록 만든다. 특히 백씨에게 술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는 도구였다. 세상사람들이 ‘웰빙’을 부르짖으며 와인을 찾고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할 때, 그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집안에 갇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웰빙은 낮은 사회계층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씨나 백씨에게 웰빙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이었을 것이다. 서울 서초구 김옥희씨의 경우 서초구의 김옥희씨는 인생의 마지막을 가족의 따뜻한 배려 속에 보냈다. 그들 가족에게는 사랑이 넘쳤고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인간적인 애절함과 진정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김씨의 삶의 가치는 그만큼 종말기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을 논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말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가치, 삶의 질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삶의 가치, 삶의 질은 부유한 계층의 것은 아닌가? 부유한 계층이 누리는 삶의 질을 시기하거나 그들의 삶의 질을 끌어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가능한 한 최대한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즉, 낮은 사회계층들도 그들의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세 분의 명복을 빈다. 강영호 울산대 의대 교수
1만명당 의사수 서울 강남 47명…부산 강서 2.8명 보건의료자원 지역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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