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공공미술가 권은비 예술감독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사상이나 생각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어요.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나죠. 일제가 만든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두고 72년 전에 제정된 법이 2020년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내달 25일부터 9월26일까지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는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권은비 작가의 말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좋아해요. 세계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죠. 하지만 국보법은 그들의 사상과 생각을 검열합니다. 제 독일 친구들조차 북한 여행을 하더군요. 대한민국 국민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북한에 갈 수 없어요.” 지난 23일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권 작가를 만났다.
전시는 국보법 피해자이거나 이 법의 철폐운동에 앞장선 여성 11명(고애순, 권명희, 김은혜, 김정숙, 배지윤, 안소희, 유가려, 유해정, 정순녀, 유숙렬, 양은영)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술작가단 다섯이 기록한 11명의 구술은 다시 배우 문소리·조민수, 소설가 정세랑·황정은 등의 목소리로 녹음돼 국보법 피의자들의 심문공간이었던 5층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나게 된다. 4층 전시장에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지금껏 모은 250건 이상의 국보법 자료를 토대로 1948년 국보법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맥락을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준다. 구술 기록은 내달 초 책으로도 나온다.
왜 ‘여성서사로 본 국보법’일까.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국보법 철폐 싸움을 보면 사실 민가협 엄마들이 중심이었어요. 투쟁 사진을 봐도 민가협 엄마들이 많아요. 지금도 싸우고 계시죠. 하지만 언론은 유명한 열사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보여줍니다. 주로 남성들이죠. 저는 이 싸움에서 여성들이 뭘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부가 함께 학생운동을 하고 국보법으로 고초를 겪었어도, 이 시련이 유독 남성에게만 훈장이 되는 현실도 짚고 싶었단다. “구술자 한 분이 그래요. 시민운동을 하는 남편에게 국보법 구속은 경력처럼 이야기되지만, 가사노동만 해온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요.”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를 나와 공공미술 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8년 전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나 올해 초 귀국했다. 재작년에는 베를린예술대 ‘맥락 안의 예술’(ART IN CONTEXT)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체험도 그가 국보법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는데 영향을 미쳤단다. “베를린에 있으면 꼭 물어요. 남이냐 북이냐고요. 그 도시에 있는 북한 대사관을 보고도 ‘너희 나라 대사관이냐’고 묻죠. 그러면 ‘아니야 북한 대사관이야’라고 답해주죠. 베를린에는 소문이 많아요. 누가 북한 사람을 만났더라, 그런 거요. 그때마다 유럽 친구가 아는 북한 친구를 내가 만나면 국보법 위반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가 3년 전에 국보법을 주제로 단편영화 <유령을 기다리며>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영화는 2018년 디엠제트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권은비’는 ‘베를린에서는 북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날 갑자기 베를린으로 떠난다. 정치적 이념과는 상관없이 평화롭게 북한 사람과 커피 한잔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전시기획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부제로
새달 25일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서
“민가협 어머니들이 늘 투쟁 선두에” 베를린 8년간 ‘사상 통제’ 비판적 성찰
“일제 악법 아직 있다니 부끄러운 일”
이번 전시회를 여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재작년에 국보법을 ‘역사의 유물’로 만들자는 취지로 구성됐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도형 민변 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등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7년 말 베를린에서 ‘촛불 시민’이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주는 인권상을 받을 때 제가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가이드했어요. 그때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를 만난 게 인연이 돼 저도 추진위에 참여했죠.”
권 작가는 예술의 사회적 책무를 중시한다. 그가 베를린에 8년 가까이 머물며, 계급이나 성 혹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작품을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공미술을 공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도 이런 예술관이 투영되어 있다. “재작년 4월 추진위로부터 국보법이 사라져 박물관에 있다는 전제로 전시하려고 하는데 참여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런 전시는 보통 예술가를 섭외해 그들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 싫었어요. 지금도 국보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국보법이 뭐고, 이걸로 파탄 난 삶은 도대체 어떤지 그런 기본정보를 전하고 싶었죠.”
전시 공간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국보법 사범을 심문하고 때로는 고문까지 하던 곳이다. 이번 전시의 공간이 되어야 할 역사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구술자 중 언론인 유숙렬 선생은 80년에 여기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했어요. 기자협회장으로 수배를 당하던 김태홍 선생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요.”
그는 베를린 생활 이후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단다. “한국에 있을 때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한 어른들이 거의 없었어요.” 무엇이 그를 확신하게 했을까. “베를린은 독일의 역사를 공공미술로 잘 구현한 도시입니다. 도시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보여주는 공공미술을 만나죠.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떤 공간이었고 어떤 시간을 거쳤는지를 일상에서 느낄 수 있어요. 1990년 통독 이후 전략적으로 공공미술을 많이 조성했다더군요. 일상에서 작품을 보며 역사적 과오를 잊지 않도록요. 제가 공부한 베를린예술대도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 안의 예술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공미술은? “주로 동상에 머물죠. 동상 인물의 디테일만 있어요. ‘나는 미술가이니 어디든 조형물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해요. 역사나 사회학적 그리고 도시학적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공간에 누가 어떤 삶을 사는지 면밀하게 봐야죠. 동그라미로 유명한 작가라고 뜬금없이 동그라미를 갖다 놓는 그런 공공미술은 안 됩니다.” 서울 도심의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은 어떻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전봉준이 역사에서 우리에게 뭘 했는지 보여주어야 하는데, 작품에 그게 없어요.”
공공미술가의 꿈은 어떻게 키웠을까. “대학 때 농촌활동을 가 벽화를 그리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저한테 다가와 그래요. 진짜 그림은 처음 본다고요. 그 이야기는 평생 미술관 한번 가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요. 우리 먹거리를 만드느라 고된 노동을 하는 분인데요. 그때 차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미술을 하겠다고 결심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전시 공간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복도에서 만난 권은비 예술감독. 그는 “구술자 11명의 이야기를 검토하며 매번 울었다”며 “전시에서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국보법과 맞서 치열하게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부제로
새달 25일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서
“민가협 어머니들이 늘 투쟁 선두에” 베를린 8년간 ‘사상 통제’ 비판적 성찰
“일제 악법 아직 있다니 부끄러운 일”
권은비 예술감독이 지난 16일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기자회견에서 전시 공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권은비 예술감독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제공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