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28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직권조사를 요청했다. 피해자 쪽은 이날 인권위에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 30개를 함께 제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들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박 전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인권위가 직권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진정’에 따른 조사 대신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직권조사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적극 조사하고 제도 개선 등을 권고할 수 있다. 직권조사 요청서에는 피해자가 진정을 통해 판단받으려 했던 사실관계가 모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한겨레>에 “인권위에 30개의 증거 목록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쪽은 직권조사를 통해 단순히 성추행 의혹만이 아니라 방조 의혹이나 고소 사실 누설 경위 등을 폭넓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성차별적 직원 채용 및 성차별적 업무 강요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 △서울시 관계자들의 피해 방조 △미흡한 피해 구제 절차 △고소 사실이 누설된 경위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 조처 이행 여부 등이 모두 조사돼야 하며 지자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의 성폭력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도록 인권위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피해자의 진정이 접수되지 않아도 인권침해나 차별이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인권위는 직권조사 및 권고를 할 수 있다. 조사 범위가 진정이 제기된 내용에 한정되는 진정조사에 견줘 직권조사는 구조적 문제까지 폭넓게 살필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해자의 말대로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본질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진행한 서울시청 앞 행진엔 다양한 나이대의 시민 100여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취지로 평등을 의미하는 색깔인 보라색 우산을 맞춰 들었다. 김채연(23)씨는 “사회초년생인 친구들이 성폭력 피해가 있어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걸 봤다.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이아무개(58)씨도 “피해자가 원하듯 독립기구로서 인권위가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조사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는 이날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인권위에 제출한 뒤 최영애 인권위원장과 면담했다. 면담에서 최 위원장은 “이번 사안을 하나의 사건으로만 다룰 게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까지 봐야 한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윤경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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