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는 그 자체로 불법행위라며 ‘양승태 대법원’ 판단을 뒤집고 국가 배상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이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김형두)가 김아무개씨 등 긴급조치 피해자 3명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긴급조치 사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정부의 상고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부정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의 심리를 받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상고장 제출과 동시에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금을 원고들이 가지급받지 못하도록 강제집행 정지도 함께 신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에 확립된 대법원 판례는 긴급조치가 위헌일지라도 ‘고도의 국가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불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 판례의 주심은 오는 9월 퇴임을 앞둔 권순일 대법관이다. 당시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 사법농단 문건에 ‘국정 협조 사례’로 등장해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가 부적절한 교감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5부는 지난 9일 “긴급조치는 그 발령 당시부터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어서 국민 통제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돼야 한다”, “긴급조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에서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라며 수사 과정에서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국가는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이 판단을 받아들이려면 전원합의체를 열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원고 대리인인 신동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긴급조치에 대한 법적 판단의 문제다. 대법원 구성이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에 전향적인 판단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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