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 분석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광고 테러
커터칼에 훼손된 성소수자 광고
얼굴 드러낸 성소수자와 지지자
517명 얼굴과 존재 지우는 위협
게시부터 공공기관 거부 부딪혀
훼손된 자리에 포스트잇 붙이고
복구 작업 함께한 시민도 있어
‘성소수자 싫어서’ 범인은 잡혀도
다시 훼손될까 시민감시단 활동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광고 테러
커터칼에 훼손된 성소수자 광고
얼굴 드러낸 성소수자와 지지자
517명 얼굴과 존재 지우는 위협
게시부터 공공기관 거부 부딪혀
훼손된 자리에 포스트잇 붙이고
복구 작업 함께한 시민도 있어
‘성소수자 싫어서’ 범인은 잡혀도
다시 훼손될까 시민감시단 활동
![지난 8월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지하철역에 훼손되었던 성소수자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8월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지하철역에 훼손되었던 성소수자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647/imgdb/original/2020/0807/20200807502627.jpg)
지난 8월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지하철역에 훼손되었던 성소수자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용감한 517명의 얼굴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은 해마다 5월17일에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경종을 울리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도 2012년부터 다양한 캠페인과 활동을 진행해왔고 2019년에는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약 500명이 야간 거리행진을 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대규모 행사를 열 수 없는 상황에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광고를 준비하게 되었다. 등하굣길과 출퇴근길에 이용하고,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서 들르는 일상의 공간인 지하철 역사에 광고를 설치해 성소수자가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시민들에게 ‘517개의 얼굴들’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의 얼굴을 드러내면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다’는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가 얼굴을 드러내는 데는 아직 큰 용기가 필요한데도, 짧은 기간 동안 거짓말처럼 243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정면을 응시하거나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들, 각양각색의 장소, 저마다의 추억이나 사연이 깃든 사진들이 모이자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많은 분들이 ‘사진 크기가 작거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면 다른 사진을 더 보낼 테니 연락해달라’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무사히 게시되길 바란다’는 응원 메시지도 많았다. 광고를 위한 모금에도 순식간에 400여만원이 모였다. 하지만 광고 심의 신청부터 성소수자 차별과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하철에 광고가 게시되기 위해서는 광고 시안이 서울교통공사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바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대행사를 거쳐 절차가 진행되고 그 결과도 받아보게 된다. 가장 먼저 상담한 2곳의 대행사는 우리 광고를 기피해 결국 세번째로 견적을 받은 대행사와 일을 진행했다. 심의기간은 대개 10일이지만 상업광고가 아닌 ‘의견광고’는 1개월이 걸리고,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지하철광고는 성소수자 관련 광고이므로 심의에 1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5월12일 심의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광고가 부당하게 거부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서울교통공사는 공공기관이므로 광고 게시를 거부할 경우 그에 맞는 근거를 내놓아야 할 터였다. 6월11일 대행사는 불승인 결과를 전했다.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청했지만, 대행사도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전화 통보를 받은 것이 전부이고, 결정 근거나 심의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근거도 없이 ‘불승인’ 세 글자만 통보한 것은 더욱 충격이었다. 더구나 대행사는 서울교통공사가 재심의를 해도 불승인이 날 테니 재심의를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교통공사에 공문을 보내 심의 내역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외부광고심의위원회 개최 결과 10인 중 6인이 거부해 불승인되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정보공개청구도 거부되었다. 반대의 6표가 무엇에 근거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광고를 제작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광고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 광고를 제작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광고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732/imgdb/original/2020/0807/20200807502629.jpg)
광고를 제작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광고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
매일 신촌역으로 가다 마침내 8월부터 한달간 신촌 지하철역 안에 광고를 걸게 되었다. 광고 첫날 그 실물 앞에 서니 애틋함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광고 속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몇번이고 눈을 맞추고 인사했다.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8월2일 동틀 무렵, 누군가 광고판을 커터칼로 난도질한 것이다. 재물손괴일 뿐 아니라 증오범죄이며, 공공장소에 성소수자를 드러내지 말라는 위협이었다. 광고가 훼손된 현장 사진과 함께 이 사건이 온라인에서 널리 알려졌다. 이런 광고조차 이틀을 못 가 훼손당하는데 성소수자 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느냐, 성소수자의 존재조차 인정할 수 없냐는 괴로움과 답답함을 쏟아냈다. 얼굴 사진을 모조리 찢고 훼손한 광경은 그것을 보는 어느 성소수자에게라도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난 3일 커터칼에 훼손된 성소수자 광고가 있던 자리에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3일 커터칼에 훼손된 성소수자 광고가 있던 자리에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421/imgdb/original/2020/0807/20200807502628.jpg)
지난 3일 커터칼에 훼손된 성소수자 광고가 있던 자리에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 훼손되었던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 훼손되었던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502/imgdb/original/2020/0807/20200807502630.jpg)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 훼손되었던 광고판이 다시 설치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혐오보다 빠르게 퍼진 이미지 ‘성소수자는 당신의 혐오를 이길 겁니다.’ 한 시민이 찢어진 광고 사진 위에 만든 디지털 이미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빠르게 공유되어 한 편협한 자의 증오범죄보다 힘 있게 퍼져나갔다. 우리는 성소수자 혐오를 이길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광고 게시를 거부당하지 않도록, 성소수자가 증오범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적으로 일상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캠페인할 것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며,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하나씩 바꿔나갈 것이다. 평등의 외침은 반드시 증오와 폭력을 이긴다. 잇을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기획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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