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9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학원가에 침투해 반미 투쟁을 선동한 구미 유학생 간첩단 22명을 검거해 이 중 1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대학에서 만난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 등이 재미 북한공작원 서정균에게 포섭돼 간첩이 된 후 국내에 들어와 학생운동권에 공작금을 주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게 당시 안기부 발표 내용이다. 1985년 9월9일자 <경향신문>(석간) 1면. <한겨레> 자료사진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꼽히는 ‘구미 유학생 간첩단’ 피해자들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는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혐의로 기소된 양동화(62)·김성만(63)씨의 재심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1심과 동일하게 무죄 선고를 내렸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는 미국과 서독 등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입북한 뒤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이 일로 양씨와 김씨는 사형을, 황대권(65)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13년여의 수감생활을 쓴 책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광복절 사면으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이씨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10개월 수감생활을 했다.
재심을 청구한 이들에게 지난 2월 1심 법원은 35년만에 ‘무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고인들의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더 있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이들의) 자백에 대한 (검찰의) 보강 증거는 충분히 있다”면서도 “(양·김씨의 행위가) 현재 시점에서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치는 것인지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1심 결론인 무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선고가 끝난 뒤 법정을 나온 김씨는 “우리가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만큼, (구미 유학생 사건의) 다른 피해자들이 청구한 재심 사건도 빨리 법원의 판단을 받아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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