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기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이하 양성평등위)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낙태죄 조항’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후속 입법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법무부 양성평등위(민간위원장 김엘림)는 21일 이런 내용을 심의·의결해 법무부에 권고안을 전달했다.
헌재는 지난해 4월11일 형법의 낙태죄 조항(제270조 1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하고, 2020년 12월31일 시한으로 입법자가 형법을 개정할 때까지만 낙태죄를 적용하도록 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려고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지난해 4월 당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낙태죄 폐지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제21대 국회에서는 개원 뒤 낙태죄 관련 법률안이 상정되지 않고 있다.
양성평등위는 법무부에 세 가지 사항을 담은 권고안을 냈다. 첫째, 낙태죄 처벌에서 여성이 평등·건강·안전·행복하게 임신·임신 중단·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법·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해 형법의 낙태죄를 폐지하는 개정안 마련이다. 다만,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임신중지를 하게 하거나 이를 통해 여성을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을 처벌하는 ‘부동의 낙태죄’를 규정한 조항(제270조의 제2·3항)은 보완해 다른 조항(상해와 폭행의 죄)에 두도록 했다. 셋째,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계 부처 및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국민의 성과 재생산·건강권을 보장하며 원하지 않은 임신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이런 권고안을 추진할 때 임신의 주수에 따른 처벌 기준 구분 등 몇 가지 유념해야 할 문제의식도 당부했다. 양성평등위는 “임신의 주수별로 낙태의 허용과 조건부 허용, 불허용으로 처벌 기준을 구분하는 것은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고 정확한 임신 주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획일적으로 일정한 임신주수를 기준으로 형벌을 면제하거나 부과하는 것”이라며 “이는 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나 타당치 않다”고 밝혔다. 양성평등위는 또 “세계적 흐름은 낙태 처벌의 비실효성 문제를 경험한 뒤 낙태죄를 폐지하고 교육과 사회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날 권고와 관련해 “정부 입장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법무부는 이번 권고사항을 비롯해 추가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입법 시한(올해 12월31일) 안에 차질 없이 후속 입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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