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의 권리가 무시된 의사집단휴진을 규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공공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가 ‘공공의료 강화 포기선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의료 정책 수립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등 177개 시민사회단체는 4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미흡한 공공의료 정책을 내놓고도, 그조차도 의사단체와 밀실에서 협의해 무산시켰다”며 “정부가 의사들의 ‘환자 인질극’에 백기투항하고 공공의료 개혁을 포기한 것으로, 시민 생명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할 정부와 여당의 무책임한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로 인해 공공의료 필요성이 높아졌는데도 정부가 개혁을 진전시키기는커녕 되레 후퇴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책임져주는 국공립병상 등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지만, 정부는 밀실 합의로 국민이 위임한 주권을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도 “정부가 집단휴진에 굴복한다면 이후 과잉진료·의료공백 등의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동계는 노사정 합의사항이었던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이 여당과 의협의 대화만으로 좌초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노사정 합의를 저버린 정부, 집단 이기주의 의협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를 위해 인력을 최대한 확충하고, 국공립 보건의료 인프라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좌초된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의협에서 문제 제기하는 정책에 대해서 정부가 의료계와 새로운 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겠다는 합의문 내용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환자를 볼모로 삼아 집단휴진을 진행한 의협을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규탄했다.
환자단체 등 의료소비자들은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중단된 것과 관련해 안도하면서도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환자들을 볼모로 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며 “의료계가 두번 다시 환자를 볼모로 의료를 거부·중단하는 등 환자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의료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는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그동안 민간 중심 의료시스템을 묵인·방조해온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도 명분 없는 파업을 강행하는 의사들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제라도 정부는 공공의료 방치를 반성하고 의료 정책에 시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경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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