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이 기자 채용시험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을 고소한 당사자를 ‘피해자’로 부를 수 있을지 여부를 물어 입길에 올랐다. ‘을’의 신분인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언론사가 사실상 ‘사상검증’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결국 문화방송 쪽은 14일 ‘재시험’ 계획을 밝혔다.
14일 <한겨레>와 인터뷰한 문화방송 응시자들은 “회사가 입사 지망생들을 상대로 사상검증을 하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2년가량 언론사 취업을 준비한 ㄱ씨는 “여당에서도 지난 7월 ‘피해자’로 호칭을 정리했을 만큼 이미 논쟁이 끝난 사안인데, 문화방송이 응시자들에게 견해를 다시 물어보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시자 ㄴ씨도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공채가 많이 열리지 않는다. 내 주관과 달리 회사가 기대하는 논조로 답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문화방송은 앞서 13일 신입 기자를 뽑는 논술시험에서 박 전 시장을 업무상 위력 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고소인’ ‘피해자’ 중 어떻게 지칭해야 적절한지를 물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문화방송의 낮은 감수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응시자 ㄷ씨는 “수백명의 응시자에게 그를 ‘피해자’로 지칭할 수 있을지 여부를 물은 뒤, 글을 공영방송이 평가한다는 사실만으로 피해자에게 압박이 될 것 같다”며 “이번 논제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문화방송 내 여성 구성원, 여성 응시자에게도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시자 ㄹ씨도 “어떤 답변이 합격을 위해 유리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의 호소를 근거 없이 의심하는 기분이 들어 피해자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죄책감과 자괴감은 오롯이 지망생의 몫으로 넘겨졌다”고 토로했다.
문화방송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성평등위원회는 “이미 내부에서도 ‘피해자’로 보도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린 사안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문제를 출제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회사 안팎의 비판 속에 결국 이날 문화방송은 “피해자와 응시자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재시험 계획을 밝혔다. 문화방송 쪽은 “해당 문제를 채점에서 제외하고 새로 문제를 출제하여 재시험을 치르겠다. 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 성인지 감수성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박윤경 문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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