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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수사매뉴얼 바꿨지만…‘성폭행 신고하니 무고 수사’ 여전

등록 2020-09-16 04:59수정 2020-09-16 07:20

피해 당일 가해자와 회사 문자 이유
검사 “피해자 모습 아냐”…무고 기소
신고 주저 없게 매뉴얼 개정했지만
무고 맞고소 수사 중단 강제성 없어
검사 성인지 감수성에 의존 한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가 피의자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소연(가명)씨는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시도한 회사 선배를 지난해 12월 고소했다. 피해 조사인 줄 알고 지난달 불려간 검찰청에서 “무고 정황이 발견돼 조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피해를 겪은 날 가해자와 회사 메신저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에서다. 검사는 그에게 계속해서 “일반적인 피해자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얼마 뒤 소연씨는 무고 혐의로 기소됐다. “저 같은 피해자가 있으면 오히려 고소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 잔뜩 움츠러든 소연씨는 15일 <한겨레>에 말했다.

‘무고’ 수사로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거나 신고를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법무부가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미투 폭로’가 잇따른 2018년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맞고소하더라도 수사가 끝날 때까지 무고 혐의에 대한 수사는 중단하도록 했지만, 검사가 무고 정황을 발견해 수사에 착수하는 경우는 예외로 뒀기 때문이다. 수사 매뉴얼의 취지가 제대로 적용되려면 좀 더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은 “매뉴얼상 성폭력 사건 고소인에 대한 무고 인지는 신중히 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매뉴얼이 나온 뒤로 검사 인지에 의한 무고 수사가 줄고 있지만, 이는 반대로 현장에서 검사 편견에 의한 불필요한 인지도 많았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2018년 검찰이 직접 인지한 성폭력 무고 사건은 330건이다.

수사 매뉴얼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담당 검사의 성인지 감수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검사가 잘못된 통념으로 무고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인식이 매뉴얼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매뉴얼이 정확한 지침을 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연씨는 무고 혐의로 기소됐지만 정작 그가 고소한 직장 내 성폭행 사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도 검찰이 가해자 쪽이 제출한 증거를 무고의 중요한 근거로 봤기 때문이다. 피해를 겪은 날 가해자 쪽이 소연씨를 집에 데려가기 전부터 대화를 녹취한 자료였다. 이 녹취에 근거해 검찰은 ‘피해자가 거부하기 전까지 모든 과정에 상호 합의가 있었다’고 봤다. 소연씨 쪽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검사의 판단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항고한 상태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법적 절차에 따라 무고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에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사에서도 인권침해적 발언은 없었다”고 밝혔다.

소연씨는 일터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미 직장에선 ‘무고범’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처음엔 회사 안에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어요. 근데 아무도 제 편이 되어주지 않아 마지막으로 수사기관에 손을 내밀었던 건데 이제 아무도 못 믿겠어요.”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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