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에게 18일 무죄가 선고됐다. 그동안 1심 선고가 이뤄진 사법농단 관련 사건 4건에서 법관 6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게 됐다. 법원 안팎에선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일각에선 검찰 수사에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래니)는 이날 공무상 비밀 누설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법원장은 2016년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원 비리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으로 당시 기획법관이었던 나아무개 판사를 시켜 구속영장 등 수사기밀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이 직원들에게 영장 청구서 사본을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은 정당한 업무 수행에 관한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반발했다. 검찰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재판부는 공무상 비밀 누설은 마치 기획법관의 단독 범행인 것처럼 결론 내리고, 직권남용에 대하여는 피고인의 철저한 감찰 지시가 있었을 뿐 위법 부당한 지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비판하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 14명인데, 이날 이 전 법원장 판결로 총 6명이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났다. 그동안 무죄 선고된 판결 흐름을 보면, 법원은 외형상 법원행정처 등 외부의 영향이 있더라도 ‘법관은 어차피 독립돼 판단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로 사법행정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면서 잇따라
무죄를 쓰고 있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 재판부는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하면서도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법관 고유의 업무에 해당하는 재판과 관련해서는 ‘남용할 직권이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임 부장판사 요구로 가토 사건 재판부가 판결 이유까지 수정했지만, 법관은 애초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기밀을 보고받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공무상 비밀 누설)로 기소된 신광렬 부장판사는 1심에서 “법원 내부 보고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를 두고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기밀인 영장기록을 법원행정처로 넘긴 것이 정당한 업무라고 판단한 셈”이라며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본다면 일반 피고인에게는 관행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이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 성창익 변호사는 “사법행정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판사들도 관행적으로 업무를 해왔고, 법원 판단도 그러한 인식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무죄에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로펌 변호사는 “기소된 피고인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사건은 사법행정권이 용인되는 경계 지점에 놓여 있어 형사사건으로 다루기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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