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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더 약한 이에게 손길을 내미는 공동체

등록 2020-09-18 21:27수정 2020-09-19 02:33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⑨시민이 쓰러졌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를 종식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졌던 것도 잠시, 2차 유행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올해 초부터 각 지역의사회는 보건소와 힘을 모았다. 먼저 지역사회 의료인들이 보건소와 업무를 분담하고자 주말 선별진료소 근무를 나섰다. 대구의 집단감염 당시 대구에 가서 돕긴 어려워도 지역사회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 틈틈이 선별진료소 업무를 도왔다. 이렇게 지역사회의 협조에 보건소 공무원들의 헌신과 선제적 방역 조치가 바탕이 돼 잘 버텨왔다. 그런데 이번 수도권 대규모 감염에는 우리 지역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 대기하던 시민 한 분이 쓰러졌어요.”

8월 말 서울의 한 선별진료소에 근무하던 중 재빨리 방호복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잠시 쓰러졌지만 의식을 잃지 않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년의 여성이 더위와 긴장으로 잠시 의식을 잃은 상황이다. 지병이 없어 다행이었다.

“일단 몸 상태를 회복하시고 다시 오셔서 검사를 하시면 어떨까요?”

“안 돼요. 지금 꼭 받아야 해요.”

반드시 검사를 받을 이유는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분이었다. 잠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에 검사를 받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셨다. 타고 온 차에서 검사를 하는 걸로 하고 차에서 편히 쉬고 계시도록 했다.

같은 날이었다. 선별진료 부스 안에서도 쓰러지는 사람이 나왔다. 지난 3월부터 함께 고생해온 보건소 공무원이었다. “어지러워요. 쓰러질 것 같아요” 하며 휘청거렸다. 쓰러지는 사람들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전쟁을 치르는 상상을 했다. 생활고로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슬픈 소식도 들린다. 전쟁의 비유를 결코 들고 싶지 않지만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고 사람이 쓰러지는 코로나19 위기는 실로 전쟁과 다름없었다.

이 전쟁은 언제, 어떻게 끝이 날까? 돌봄 노동자가 쓰러지면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부담은 더해진다. 아이 돌봄의 부담을 떠안은 부모의 일터 또한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반년 이상 코로나 방역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이 혹시라도 아프면 다른 공무원의 업무가 가중된다. 방역 업무가 과중한 공무원들의 이탈은 지역사회에 감염 위험을 높인다. 안일한 마음에 참여한 모임, 예배, 집회 등을 통해 퍼진 감염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 집회와 예배에 참여한 이들을 공격하는 언행은 그들이 검사를 받지 않도록 해서 더 큰 감염의 불씨가 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동요가 떠올랐다. 국경이 폐쇄된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전 세계가 연결되었음을 깨닫는다. 세계를 누비며 낯선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 세계시민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곁에 있는 낯선 이의 상황을 세심히 살피는 것이 코로나19를 방역하는 시민의 자세임을 배운다. 우리가 연결된 공동체임을 극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 때문이다. 비대면으로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가리란 다소 무책임한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바쁘고 위험하게 일하는 이들이 연결을 매개하고 필수품을 전달하는 배달 노동자인 역설을 마주한다. 말벗 역할의 로봇이 독거노인 곁에 있어도 몸이 불편할 때 식사를 챙겨주고 대소변을 처리해주는 돌봄 노동자의 손길을 대체할 수는 없다.

백신이 나오면 모두 해결되는 것일까? 일단 백신을 누가 먼저 맞을지, 비용은 누가 댈지를 정해야 할 텐데, 아마도 선택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이 하리라. 다행히 매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며 잠시 이 시절을 추억하곤 하겠지만, 여전히 둥근 지구에 인간과 동식물 그리고 바이러스가 공존하고 있음을 잊고 세심히 이웃을 살피지 않는다면 조류독감,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로 이어지는 전염병의 계보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치료약과 백신이 하루빨리 개발되어 코로나19가 종식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더 약한 이를 위해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및 위생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고, 이웃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보단 쓰러진 이에게 손길을 내미는 ‘공동체’가 위기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리라 믿는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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