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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벽장 열고 세상에 나온 농인 성소수자들

등록 2020-09-21 04:59수정 2020-09-21 08:20

우지양씨 30년 숨어 살다시피
같은 처지 만나본 적 없었는데
퀴어축제 부스 준비하며 연대
“2023년 세계농아인대회 준비”
“세상에 나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우지양씨는 농인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다. 그는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내 “벽장 속에 숨어서 살다시피 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퀴어문화축제에서 농인 성소수자 단체를 만난 뒤 지양씨를 가뒀던 벽장 문이 환히 열렸다. 청인 방문객들에게 ‘게이’ ‘레즈비언’을 뜻하는 수어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난해 가을 지양씨는 지역 퀴어문화축제를 찾아가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부스를 열었다. 수어 통역을 곤란해하는 주최 쪽 대신 혼자서 통역 인력까지 구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국의 농인 성소수자에게도 동지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농인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한국농인엘지비티(LGBT)’ 활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농인인 지양씨에 이어 코다(CODA·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인 김보석씨 등 정체성을 고민해온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보석씨와 지양씨는 “농인 사회는 청인 사회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족한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 수어엔 남성 동성애자를 ‘항문성교 하는 사람’으로, 여성 동성애자를 ‘신체를 비비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등 차별적인 시각이 녹아 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농인단체에서 강연이 취소되고 통역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보석씨는 특히 “농인 성소수자도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며 성소수자 혐오가 불거졌을 때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비상연락망을 구축했다. 농인·청인 성소수자가 모이는 공부 모임을 열어 서로 차별받은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보석씨는 “참가자들이 ‘다른 친구들도 데려와야겠다’며 수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한국농인엘지비티는 아직 ‘설립준비위원회’ 단계다. 농인 성소수자 당사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협회’에 머무르기보다는 농인과 청인,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모두 평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더불어 함께하는 ‘인권단체’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다. 지난달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나섰고, 최근엔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 혐오 없는 한국 수어 표현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2023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연맹 총회에서는 어엿한 인권단체로 우리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때까지 지치지 않을 겁니다.” 지양씨가 손짓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전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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