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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관부터 고교생까지 ‘성범죄재판’ 머리 맞댔다

등록 2020-09-22 04:59수정 2020-09-24 10:56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재판다시돌아보기팀’ 주최
법조계·시민단체 등 370여명 참여
온·오프라인 동시 포럼 열려

“피해자, 소송기록 접근권 보장을”
“법정 나와 적극 진술 고려도”
지난 18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성범죄 재판, 함께 돌아보기’ 포럼 오프라인 현장. 3백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재판다시돌아보기팀> 제공.
지난 18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성범죄 재판, 함께 돌아보기’ 포럼 오프라인 현장. 3백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재판다시돌아보기팀> 제공.
지난 18일 저녁 7시, 주말을 앞둔 금요일 늦은 시각임에도 재판 실무를 담당하는 일선 법원 판사와 검사, 시민단체 활동가, 시민 등 370여명이 온·오프라인 동시 포럼으로 진행된 자리에 모두 모였다. 주제는 ‘성범죄 재판, 함께 돌아보기’로, 법원 젠더법연구회의 ‘재판 다시 돌아보기팀’(이하 재돌팀·팀장 유성희 판사·포럼 총괄 유현영 판사)이 주최했다. 이날 포럼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이뤄졌다.

서울동부지법 11층 중회의실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15명이 포럼을 진행하는 사이 줌을 통해 온라인 채팅방 토론이 활발히 진행됐다. 판사·변호사(240여명)와 검사(6명),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및 교수(50명), 성범죄 사건 관련 활동가와 상담사(60여명), 고등학생(2명)에 노정희·노태악 대법관도 온라인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번 포럼은 재돌팀 소속 법관들이 시민 재판 방청연대를 이끌어 온 활동가와 성범죄 피해자를 직접 인터뷰하며 바람직한 성범죄 재판을 모색하려고 기획한 산물이다. 재돌팀은 젠더법연구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11월 결성됐다. 당시 의정부지법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불법촬영한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판결문에 피해자 사진을 실은 사건이 <한겨레> 보도로 알려진 것이 모임의 계기가 됐다(관련 기사 [단독]“레깅스 불법촬영 무죄” 법원, 판결문에 피해 여성 사진 실었다). 이 일로 성범죄 피해자의 인격권 침해 및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고, 아동·청소년이 포함된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성범죄 재판 절차 전반의 피해자 권리 보장 문제로 연구 범위가 확장됐다.

재돌팀의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절차상 권리 및 보호’ 발표는 이날 포럼에서 토론의 물꼬를 텄다. 피고인이 주체가 되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피해자의 재판 참여권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피고인의 소송기록 열람·복사를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할지를 두고도 격론이 오갔다. 재돌팀은 “피해자는 공소제기 뒤 소외되기 쉽고 재판 진행 정보를 제대로 얻기 어렵다”며 “재판 절차 진술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생활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소송기록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판결문 공개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 조처를 논의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점을 짚었다.

서울서부지법 정계선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소송기록 열람복사를 허용해야 한다”며 “실제로 피고인이 반성문에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기재하는 등 재판부가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피해자가 소송기록을 복사해 반론을 펼쳐 재판부 판단을 돕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 만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진술이 오염되지 않도록 피해자가 참고할 기록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열람·복사 허가가 필요하다”며 그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부별 편차를 줄이기 위한 방향 제시도 필요하다고 했다.

시민사회가 바라본 성범죄 재판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나눴다. 재판 모니터링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한 활동가가 발제를 통해 “피해자는 증인으로 출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법원을 찾지 않는 데다 판사와 검사, 피고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재판 구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서부지법 신진화 부장판사는 “성범죄 피해자가 손을 들고서라도 법정에 나올 것을 권하고 싶다”며 “변호인 반대신문이 2차 피해를 준다는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인신 모독적인 질문들이 줄어든 대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자료는 현저히 취약해졌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피해자 스스로 (변호인의) 질문에 맞서는 적극적인 자세도 해결방법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합의서를 제출한 뒤라도 손해배상이 실제 어느 정도였고, 사과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재판부가 알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럼을 마친 뒤 재돌팀의 한 관계자는 “법관들이 자기 재판을 성찰하는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판이란 법관이 아닌 국민의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 재판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법원에서도 성범죄라는 하나의 이슈를 통해 재판 전체를 돌이켜볼 수 있게 된 건 처음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텔레그램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공동 변호인단 소속 원민경 변호사도 “피해자 변호인이 피고인의 유죄 입증을 위해 노력해야 할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점도 인상적이었다”며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재판 당사자로 참여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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