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신고를 받고도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립대학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피해자 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28일 인권위는 전남대학교가 교내 성폭력 사건을 접수하고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의 분리, 조정절차 안내 등 적절한 보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인 ㄱ씨는 ‘2018년 12월 교수들이 동석한 술자리에서 같은 과 학생 ㄴ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학교 쪽에 피해를 알렸지만 보호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특히 ㄱ씨는 문제를 제기하고도 학교의 조처가 미흡해 ㄴ씨와 수업 등을 통해 마주쳐야 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ㄱ씨는 “추행당한 순간의 기억을 지울 수 없어 ㄴ씨를 마주치는 게 두려웠다. 뒷모습만 봐도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진정인은 성추행 신고 이후 피신고인과의 대면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와 함께 학업수행에 대한 어려움을 인권센터와 법전원 측에 여러 차례 호소하며 보호조치를 요구하였으나, 인권센터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강의 진행 과정에서 사정상 분반이 어려운 수업의 경우 영상 강의 등의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는 등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했다”고 짚었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나간 뒤 법전원 교수가 기사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면서 ㄱ씨를 초대하는 등 공개적인 2차 피해가 발생한 일도 있다. 해당 교수는 인권위 조사에서 “반론권 보장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인권위는 “피해자가 겪게 될 고통은 고려하지 않고 학교의 명예회복만을 중시한 처사”라고 봤다.
학교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ㄱ씨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알려서는 안 된다. 소문에 유의하라”는 ‘2차 가해’ 발언을 듣기도 했다. 인권위는 “법전원은 차별·소외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가치관 함양을 교육 목표로 하면서도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미흡했다”며 전남대 총장에게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법전원 교수들에 대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라”고 권고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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