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뇌전증을 앓고 있어 일시적 기억상실로 자신이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 피고인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변민선 부장판사는 도주치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등으로 기소된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2018년 9월 ㄱ씨는 서울 서초구 사거리에서 3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려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운전자 ㄴ씨의 차량을 들이받고 다시 방향을 틀다 적색신호 앞에서 정차한 다른 차량을 연이어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피해자 2명이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지만 ㄱ씨는 그대로 도주했다.
재판에 넘겨진 ㄱ씨와 변호인은 앓고 있던 뇌전증 때문에 의식소실이 발생해 사고를 인식하지 못했고, 도주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 부장판사도 “ㄱ씨가 사고 당시 음주운전을 하거나 무면허도 아니었고, ㄱ씨가 일으킨 사고로는 형사처벌을 받을 염려가 없었다”며 “통행하는 차량이 많은 오전 9시30분께 사고가 발생해 도주가 상당히 어렵고, 도주하더라도 잡힐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기억상실 외에 현장을 이탈한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며 ㄱ씨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고 당시 ㄱ씨의 대응과 가족의 진술도 무죄 근거를 뒷받침했다. 피해자들이 사고 처리를 하기 위해 ㄱ씨에게 말을 걸었지만 ㄱ씨는 그대로 직진했고, 그 뒤 피해자들이 ㄱ씨 차량을 막아 세우자 “사고가 났는지 몰랐다”고 했다. 출동한 경찰관의 음주측정 등에도 순순히 따랐다. 이를 근거로 변 부장판사는 “ㄱ씨의 사고 후 행태는 통상 도주하는 일반적 행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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