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푸르보요 인도네시아선원노조 한국대표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빌딩에서 열린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집담회’에서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물은 짠맛이 나고 색깔이 황색인데 한국인들은 큰 병에 든 생수를 먹어요. 우리는 그 생수를 돈 주고 살 수도 없어요.” “우리도 한국 사람처럼 생수를 마시고 싶어요.” “왜 외국인 선원들은 생수를 마시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셔야 합니까.”
한 모금의 물을 두고도 차별당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 원양어선에 탄 외국인 선원들이다. 이주노동자 선원들이 처한 비참한 환경이 첫 정부기관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원양어선을 타는 베트남 출신 선원 52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다.
7일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에 공개한 인권위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4.54시간에 이르렀다. 길게는 하루 19시간까지 일했다는 응답자도 있었고 11명은 18시간 이상 일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5명은 “선장과 부선장, 한국인 선원들에게 자주 욕설을 들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3명은 한국인 선원에게 맞은 경험도 있었다. 원양어선에 올라탄 이주 선원들은 길게는 24개월까지 이런 혹독한 생활을 견딘다.
원양어선에 타기 위해 기다리는 과정에서부터 이주 선원들은 비인간적인 환경에 놓인다. 배에 타기 전 이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넉달씩 부산 감천항의 외국인선원복지교육원에서 기다리며 교육을 받는데 이곳은 외출이 금지돼 있다. 조사에 응한 베트남 선원들은 “방 2개에 100명 넘게 모여 함께 지낸다. 답답해서 나가고 싶지만 비자가 없어서 도망갈까 봐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다”, “밥을 먹고 나면 밤에도 낮에도 문을 잠근다”고 전했다.
배 위에서의 차별도 일상적이다. 10명 중 4명은 “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특히 ‘식사와 잠자리 등에서 차별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노동자는 조사에서 “한국인과 밥도 따로 먹는다. 너무 많이 서러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마실 물이라도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응답자 52명 중 46명(88.5%)은 배에서 바닷물을 걸러 마신다고 답했지만 한국인 선원들은 대부분 생수를 제공받는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해양수산부가 이들의 노동 실태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원법에 따라 선주는 선원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 해수부 산하 해양항만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맹 의원은 “해수부에 신고된 3년치 이주 선원 근로계약서 4천여장을 받아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근로계약서에 임금에 관한 구체적 사항이나 송환비용, 근로조건에 관한 조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모두 선원법 시행규칙에 따라 근로계약서에 명시돼야 하는 내용이다.
맹성규 의원은 “불합리한 근로계약서 작성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표준근로계약서 도입과 투명한 노동자 송출입 절차 확보 등 해수부가 할 수 있는 개선 조치를 서둘러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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