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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쉬는 노래방, 주점…멈춘 건물에 ‘비대면 공원’ 생긴다면

등록 2020-10-11 09:07수정 2020-10-11 10:12

[토요판] 커버스토리
언택트 시대의 도심 공원

민간 건물에 ‘공중 공원’ 아이디어
서울시 포스트코로나 건축 공모 대상
“도심에 시민 이용 공간 많이 필요”

젊은 건축가 송재욱·정평진씨
“사회 전체 노력으로 형성된 도시
왜 임대업자들만 공간 누리나”
서울시 ‘포스트 코로나 건축 아이디어 공모’ 젊은 건축가 부문 대상작 ‘공적 공중 공원’을 만든 송재욱(왼쪽), 정평진 건축가가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시 ‘포스트 코로나 건축 아이디어 공모’ 젊은 건축가 부문 대상작 ‘공적 공중 공원’을 만든 송재욱(왼쪽), 정평진 건축가가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초록 잔디밭에도, 야외 벤치에도 온통 빨간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감겼다. 누구나 이용 가능했던 ‘공스장’(공원 헬스장) 같은 실외 체육시설도 폐쇄됐다. 지난 8월30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서울시는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는 시설을 폐쇄했다. 공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나마 누리던 도심 속 녹지 공간이 닫혔다.

“폐쇄된 공원 근처의 주거 환경을 보면 보통 원룸, 오피스텔, 다세대 주택처럼 환기나 채광이 열악한 곳들이 많아요. 공원은 도시인들이 그나마 누려온 실외 녹지 공간인데 이마저 막혀버린 거죠.”(정평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완화되면서 밀집도가 낮은 일부 공원은 이용 제한이 완화됐지만,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만난 두 명의 젊은 건축가는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대도시의 생활 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건축학을 전공한 송재욱(32)씨와 정평진(31)씨는 지난 6~8월 서울시 주택건축본부가 실시한 ‘사회적 건축―포스트 코로나’ 건축 아이디어 공모의 젊은 건축가 부문에서 ‘공적 공중 공원’을 제안하고 대상을 받았다.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도시 공간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두고 젊은 건축가 29개 팀이 아이디어를 겨룬 공모전이었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우리 삶과 밀접한 도시·건축 분야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이 공모전을 열었다.

시민들 튀어나올 공적 공간 필요해

고층 빌딩 사이에 탁 트인 잔디밭이 있는 서소문역사공원에는 이날 커피 한잔을 들고 산책하는 직장인들,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하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건축가 송재욱씨는 “코로나19 이후 건축계에선 개인 공간이 넓어지고 집에 요구되는 기능이 많아질 것이란 ‘사유 공간의 확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정된 도시 공간에서 풍선처럼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며 “사적 공간이 팽창되면 (공원처럼) 튀어나올 공적 공간이 필요한데, 지금 도심에는 시민들이 나올 공적 공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하면 도심에 시민들이 누릴 공적 공간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두 건축가는 ‘공적 공중 공원’이란 아이디어를 냈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심의 값비싼 땅과 건물을 사들여 공원을 조성하지 않아도 민간 건물 임대인이 공원과 유사한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지자체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 방식을 이들은 고안했다. 코로나 경제위기로 입주자를 찾지 못한 빈 사무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운영하지 않는 다중밀집시설에 임대인이 녹지 공간 임대사업을 하면 정부가 임대인에게 재산세 감면 혜택 등 지원을 해주자는 제안이다. 야외 공간인 빌딩 옥상에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도 좋다.

지금껏 서울시는 도심에 대규모 건물을 지을 때 1층을 행인이 오갈 수 있는 공적 공간(공개 공지)으로 개방하면 건물의 용적률 완화, 건축물 높이 제한 완화 같은 인센티브를 줬다. 공개 공지란 사유지임에도 시민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공 공간으로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 150여곳 조성돼 있다. 이 개념을 건물 내부 각 층의 유휴 공간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현재 집합제한·집합금지 명령으로 도심 내 유흥업소, 노래방, 피시방 등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자영업자들에게 업종 변경의 퇴로를 열어주고, 집이 답답한 시민들에게 안전하게 쉴 공간 임대업을 활성화하면 어떨까. 공모전 심사위원 김소라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는 심사평에서 “팬데믹 2~3년 안에 도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란 질문에 경제적 공동체가 할 수 있는 해법을 다뤘다”고 평가했다.

서울 마포구 한 대중교통 정류장 인근에 조성된 대형 건물 1층의 공개 공지. 시민들이 이용 가능하며 녹지 공간도 조성돼 있다. 김미향 기자
서울 마포구 한 대중교통 정류장 인근에 조성된 대형 건물 1층의 공개 공지. 시민들이 이용 가능하며 녹지 공간도 조성돼 있다. 김미향 기자

예를 들어, 서울 중구 을지로에 경기침체로 세입자를 찾지 못한 30평 규모 빈 사무실이 있다고 치자. 임대인은 실내를 정원 형식으로 꾸리고 1인당 5평 남짓의 공간을 커피 한잔 정도의 이용료에 빌려준다. 시민들은 앱을 열고 구글 지도에서 ‘공중 공원’(녹지공간)을 검색해 가까운 공중 공원에 찾아간다. 이 공간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도록 1인 개별 모듈형 부스를 설치할 수도 있다. 이용자는 그 안에서 눕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다채로운 휴식을 즐긴다.

얼마나 정원 기분이 날까. 송 건축가는 “광화문 대형 건물 안에 들어선 꽃집을 생각하면 식물의 양적 유통과 공급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공조명을 통한 배양, 스틸 와이어와 덩굴식물의 조합 등으로 녹지 조성이 가능하다. 특별한 장치 없이 도심 건물 상층부에서 탁 트인 창호 시스템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이미 도심 곳곳에 있는 ‘식물 카페’를 발전시킨 개념이다. 건축가 정평진씨는 “커피숍이 시간 단위의 부동산 임대업이란 말이 있듯 도시에서 공간을 빌려주고 비용을 받는 개념은 우리 곁에 익숙하다. 이걸 좀 더 저렴한 비용에 시민들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 ‘공적 공중 공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코로나와 무관하게 서울 도심 상권 평균 공실률이 10% 안팎이다. 10%의 공간을 비워두지 말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정부의 다양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적 공중 공원 이미지. 송재욱·정평진 제공
공적 공중 공원 이미지. 송재욱·정평진 제공

공적 공중 공원 이미지. 송재욱·정평진 제공
공적 공중 공원 이미지. 송재욱·정평진 제공

공적 공중 공원은 반드시 초록색으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다. 송 건축가는 “제주도를 떠올리게 온통 현무암으로 꾸며본다든지, 도시에서도 바다를 느낄 수 있게 모래사장을 조성한달지, 분수 같은 수공간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민간 임대사업자가 이 사업에 뛰어들어 다소 높은 이용료를 받는다고 해도 환영이다. 정 건축가는 “서울시가 따릉이 사업을 시작하자 민간업체들이 전동 킥보드 같은 다양한 모빌리티 대여사업에 뛰어들어 도심 이동수단이 다양해졌다. 공간사업도 ‘공적 공중 공원’이 물꼬를 터 여러 업체가 경쟁하면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닫혀버린 명동 비밀정원

두 건축가는 1986년 서울 중구 을지한국빌딩 10층에 조성된 실내 공개 공지 ‘하늘정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법령상 시민 누구나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지만 ‘명동 비밀정원’으로 불릴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다. 지난달 이 빌딩 관리사무소에 하늘정원 이용을 문의하자 “이용할 수 없다”며 출입을 통제했다. 빌딩은 시민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서울의 실내 공개 공지는 이 건물과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빌딩, 총 두 곳이 있다고 한다.(서울연구원, 2016)

두 건축가는 도심에 시민이 누릴 공간이 많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서울이란 거대 도시는 사회 전체의 공동 노력으로 발전한 것인데, 시내 주요 공간은 일부 민간 임대업자들만의 소유가 되어버렸고 시민이 마음 편히 앉을 곳을 찾기 어렵다. “1960년대 서울시 도면을 보면 지금보다 공원이 많아요. 하지만 경제개발 시기에 시가 재정을 마련하려고 도심의 땅을 민간에 팔았고 그 자리에 높은 빌딩들이 과밀하게 들어서버렸죠. 이제 와 그 땅을 다시 사들여 공원을 만들려 해도 서울 시내 지가는 지자체가 사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져버렸죠.”(정평진)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송재욱, 정평진 건축가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송재욱, 정평진 건축가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코로나19 이후 녹지 공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9월25일 기준)를 보면, 코로나 이전보다 주거지, 직장, 대중교통 정거장, 소매점 및 여가 시설 등의 이용률은 감소했는데 산, 해수욕장 등을 포함한 공원 이용률은 58% 증가했다.

감염병을 계기로 ‘공원 민주주의’ 운동도 활발하다.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녹지를 누릴 권리를 말하는 비영리재단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코로나 시대 도시공원 질 높이기’를 주제로 공원 확장 운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공원결핍지수’란 개념이 나왔다.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반드시 필요한 생활필수시설인 도시공원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집단을 연구하는 지표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걸어서 10분 내 공원에 갈 수 있는가’로 도시의 질을 평가한다고 한다.

팬데믹이 공원 모양 바꾼다

건축계는 지금껏 공원에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는 방식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사람을 분산하는 방향을 고민 중이다. 이번 공모전의 일반 부문 대상작 ‘디 인비저블 페이스마스크’(the invisible facemask)는 공원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도록 한두명이 나란히 걷는 긴 산책길을 제안한다. 지금껏 공원 부지는 넓은 정방형 형태였는데 이젠 경의선숲길처럼 길이가 긴 선형 공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서울시 포스트코로나 건축 공모전 일반 부문 대상작 비대면 공원 ‘디 인비저블 페이스마스크’(the invisible facemask) 이미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 포스트코로나 건축 공모전 일반 부문 대상작 비대면 공원 ‘디 인비저블 페이스마스크’(the invisible facemask) 이미지. 서울시 제공

코로나19의 출현 이후 건축계에서는 사회적 재난에도 대응 가능한 건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건물,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무도 커졌다. 송재욱 건축가는 “지금 불이 난 민둥산에 어떻게 나무를 심을 것인가를 다들 고민한다. 하지만 ‘나무를 떨어뜨려 심어야 한다’, ‘나무 각각이 방화력을 갖춰야 한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땅에 자리잡지 못한 나무를 외면하지 않는 것까지 건축가가 생각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나무를 곧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자기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삶까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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