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가 점거하던 집에서 발견된 주사기. 국과수 검사 결과, 필로폰과 ㄱ씨 디엔에이(DNA)가 검출됐다. 경찰은 지난 8월 ㄱ씨에게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주민 제공
마약을 상습 복용해온 50대 남성이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질러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마약청정국으로 평가돼온 한국이지만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에서 버젓이 마약사범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 것이다. 이 아파트는 재건축 비리로 소유권이 붕 뜬 사이 폭력조직과 연루된 ‘용역세력’이 점거해왔다.
15일 서울 관악경찰서의 설명을 들어보면, 경찰은 앞서 11일 관악구 신림동의 주상복합건물인 가야위드안 7층에 불을 지른 혐의(현주 건조물 방화)로 ㄱ(50)씨를 구속 수사 중이다. ㄱ씨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해당 건물에서 발견된 주사기에서 ㄱ씨의 디엔에이(DNA)와 필로폰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최근 이 아파트에서 불이 난 사실이 알려진 뒤 일부 언론이 ‘우울증 때문에 벌인 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지만 고의로 불을 질렀다고 볼 수 있는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가야위드안 주민 이아무개(72)씨는 “내 집을 점거해온 ㄱ씨가 지난해 10월 춘천지방법원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아 노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5월 ㄱ씨가 없는 사이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하는데 화장실 배수구와 천장에서 10개가 넘는 주사기를 보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신고로 주사기를 확보한 경찰은 ㄱ씨의 디엔에이를 확인해 지난 8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ㄱ씨가 홧김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가 집을 되찾자 ㄱ씨가 여러차례 압박을 했다는 것이다. 주민 대표 격인 공병호씨는 “ㄱ씨가 이불에 기름을 뿌려 불을 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퇴거를 앞두고 주민들에게 화가 나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ㄱ씨가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서서 집 안에 있는 연기를 빼는 장면이 담겨 있다.
11일 화재 당시 ㄱ씨가 문을 열자 집에 있던 연기가 복도로 빠져나오고 있다. 주민 제공
주민들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파트가 준공된 뒤 기존 분양자들의 소유권이 인정돼 아파트를 5년간 점거해온 용역세력들이 퇴거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주민은 “지하 성인오락실 화장실을 통해 마약 공급이 이뤄지는 걸로 의심하고 있다. ㄱ씨 말고도 마약을 하는 이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
관악서 관계자는 “ㄱ씨 말고도 가야위드안에서 2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7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마약은 재범 우려가 큰 만큼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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